ログイン

아리스토텔레스2
71問 • 8ヶ月前
  • 장윤영
  • 通報

    問題一覧

  • 1

    숙고에 의해 도달한 바를 유지하지 못하고 감정에 이끌리는 현상은?

    마음 약함에 대한 자제력 없음

  • 2

    성급함으로 인해 충분히 이성적으로 숙고하지 않아 감정에 굴복당하는 현상은?

    성급함에 의한 자제력 없음

  • 3

    자제력 없음과 무절제의 차이점을 서술하시오

    1. 자제력 없음: 무절제한 행위는 합리적 선택의 결과물이 아니다. 이성이 알려주는 올바른 행위의 이치를 알지만, 성급함이나 마음 약함으로 인해 감정에 져서 그러한 이치에 따라 행동하지 못한 것 후회할 줄 앎 -> 개선 가능성 있음 2. 무절제: 무절제한 행위를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것 후회할 줄 모름 -> 개선가능성 없음

  • 4

    자제력없음과 무절제의 공통점을 서술하시오

    1. 둘 다 자발적 행동 2. 둘 다 쾌고와 관계

  • 5

    실천적 지혜가 있는 사람이 동시에 자제력 없는 사람일 수 없는 이유를 2가지 서술하시오

    1. 실천적 지혜가 있는 사람은 품성적 덕을 지니는 사람. 실천적 지혜가 있는 사람은 올바른 목표를 향해 중용에 맞는 행위나 수단을 선택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 고로 실천적 지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품성적 덕이 있음. 자제력 없는 사람은 품성적 덕이 없음 2. 실천적 지혜는 아는 것을 바로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사람. 그러나 자제력 없는 사람은 아는 것을 바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함

  • 6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내린 가장 완전한 탁월성이란?

    지성

  • 7

    지성의 탁월성과의 동의어는?

    철학적 지혜

  • 8

    행복의 의미를 '철학적 지혜'를 활용하여 서술하시오

    철학적 지혜에 따른 관조적 활동

  • 9

    관조가 최고의 활동인 이유를 4가지 서술하시오

    1. 순수하고 완전한 최상의 즐거움을 인간에게 부여 2. 관조적 활동은 자족적: 삶을 유지할 필수적인 것을 제외하고 다른 무엇도 필요로 하지 않음 3. 완전성: 관조적 활동은 활동 그 자체가 목적 4. 관조는 사유활동이므로 전 생에 걸쳐 행해질 수 있음

  • 10

    행복이 덕에 따르는 활동이라면, 그것은 당연히 최고의 덕을 따라야 할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것들 중 (ㄱ)이/가 최고이며, (ㄱ)이/가 상대하는 대상 또한 앎의 대상들 중 최고이므로 인간의 고유한 덕에 따르는 최고의 활동은 곧 (ㄴ)이다. (ㄴ)으로부터 관조한다는 사실 이외에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으므로 (ㄴ)은/는 그 자체로서 사랑받는다.

    지성, 관조적 활동

  • 11

    (파이널) 정의로운 사람은 정의롭거나 절제 있는 행위를 알아야 하고, 합리적 선택에 의해 행위하되, 그 행위 자체때문에 선택해야 하며, 확고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행위해야 한다. 그러므로 어떤 행위들을 정의롭거나 절제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들이 정의로운 사람이거나 절제 있는 사람이 행했을 법한 그런 종류의 행위들일 때이다.

  • 12

    (파이널) 집을 지어봐야 건축가가 될 수 있고, 거문고를 타봐야 거문고 타는 악사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옳은 행위를 해봐야 올바르게 되고, 절제 있는 행위를 해봐야 절제 있게 되며, 용감한 행위를 해봐야 용감하게 된다.

  • 13

    (파이널) 어떤 행위가 옳다거나 절제 있다는 것은 그것이 옳은 사람 혹은 절제적인 사람이 항상 행하는 바와 같은 행위인 경우이다. 옳고 절제 있는 행위를 하는 사람이 곧 옳고 절제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러한 행위를 하되 옳고 절제적인 사람이 하듯 행하는 사람은 옳은 사람이요, 절제 있는 사람이다.

  • 14

    (파이널) 당사자들이 동등함에도 동등하지 않은 몫을, 혹은 동등하지 않은 사람들이 동등한 몫을 분배받아 갖게 되면 싸움과 불평이 생겨난다. 분배에서 정의로운 것은 어떤 가치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이 동의하지만, 그럼에도 모든 사람이 동일한 것을 가치로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

  • 15

    (파이널) 지난 편지에서 자네가 '정의란 무엇인지' 물었기에, 그에 대한 내 생각을 적어 보고자 하네. (ㄱ)은/는 보통 법을 지키는 것으로 나타나며, (ㄴ)은/는 공정성과 관련된다네. (ㄴ) 중 하나는 공동체에서 명예나 부의 분배와 관련된 것으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동등하다면 동등한 몫을, 동등하지 않다면 동등하지 않은 몫을 가지는 것이라네. 다른 하나는 상호 교섭에서의 동등함을 위해 바로 잡는 것으로, 행한 자들은 동등하게 취급되며 발생한 이익과 손해의 중간을 회복하려는 것이라네.

    일반적 정의, 부분적 정의

  • 16

    (파이널) (ㄱ)란 사람들이 옳은 일을 하도록 하고, 옳게 행동하게 하며, 옳은 것을 원하게 하는 성품입니다. 정의롭지 못한 여러 모습을 살펴보면 (ㄱ)의 의미를 쉽게 알 수 있다. 법을 지키지 않거나 욕심 많고, 불공정한 사람은 모두 정의롭지 못합니다. 공동체를 행복하게 만드는 조건이 많아지게 하는 행위는 정의롭습니다. (ㄱ)은/는 우리 이웃과의 관계에서 완전한 덕이며, 모든 덕 가운데 가장 큰 덕이라 생각됩니다. 저녁의 별도, 새벽의 별도 그 정의만큼 경탄할 만하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ㄱ)에는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이 있으며, 특수한 것에는 분배와 관련된 것과 교정과 관련한 것이 있습니다.

    정의

  • 17

    (파이널) (ㄱ)은/는 단지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훌륭한 삶을 위해 존재한다. (ㄱ)은/는 같은 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단순한 공동체가 아니며, 상호 간 부당 행위를 방지하고 교역을 촉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ㄱ)이/가 존재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그러나 그런 조건이 다 충족된다 해서 (ㄱ)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ㄱ)란 그 구성원의 가족들과 씨족들이 잘 살 수 있게 해 주기 위한 공동체이며, 그 목적은 완전하고 자족적인 삶이다.

    국가

  • 18

    (파이널) 최종적이고 완벽한 결사인 국가는 완전한 (ㄱ)을/를 이룬 것이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국가란 성장하는 단계에서 그저 생존만 추구하는 과정이라면 국가는 완전한 (ㄱ)을/를 이루지 못한다. 반면 국가가 완전히 성숙하고 나면 좋은 생활을 위하여 존재한다. 따라서 이 단계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ㄱ)한다고 할 수 있다.

    자급자족

  • 19

    (파이널) 인간은 천성적으로 (ㄱ)을/를 형성하는 존재이다.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자식, 주인과 노예 등 두 인간의 공동체가 가장 원초적이며, 이들이 합쳐져서 가정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 다음에는 마을이 구성되고 마침내 여러 마을이 모여서 도시 국가를 형성한다. 가정에서는 가장이 그 구성원들을 확고하게 지배해야 한다. (ㄱ)은/는 가정에 비해 훨씬 다양한 사람이 모인 공동체이다. 따라서 (ㄱ)은/는 각 개인의 능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국가

  • 20

    정의란 사람들이 옳은 일을 하도록 하고, 옳게 행동하게 하며, 옳은 것을 원하게 하는 성품이다. 정의롭지 못한 여러 가지 모습을 살펴보면 정의의 의미를 쉽게 알 수 있다. 법을 지키지 않거나, 욕심 많고, 불공정한 사람은 모두 정의롭지 못하다. 공동체를 행복하게 만드는 조건들이 많아지게 하는 행동은 정의롭다. 정의는 우리 이웃과의 관계에서 완전한 덕이며, 모든 덕 가운데 가장 크다. 정의의 영역에는 모든 덕이 다 들어있다. 정의의 덕이 완전한 까닭은 그 덕을 가진 사람이 자신뿐만 아니라 자기 이웃을 위해서도 그것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

  • 21

    (파이널) 아리스토텔레스는 본성과 탁월성의 측면에서 사회 정의를 강조하였다, 그는 인간은 본성상 정치적 동물이므로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고 공동체 안에서만 탁월성을 실현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국가 공동체에 대한 개인의 공적에 따라 명예나 돈, 혹은 공직 등을 분배해야 한다. 즉,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분배하는 것이 정의로운 것이므로 동등한 구성원이라면 동등한 몫을, 동등하지 않은 구성원이라면 동등하지 않은 몫을 분배해야 한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각자에게 주어야 할 그의 몫이 그가 받아야 할 몫에 비하여 과도하게 지나치거나 부족하지 않은 중용의 상태를 (ㄱ)라고 보았다. 또한 교섭에 있어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을 (ㄴ)라고 보았다.

    분배적 정의, 교정적 정의

  • 22

    (파이널) 국가는 단순한 생존을 위해 형성되지만 (ㄱ)을/를 위해 존속하는 것이다. 인간이 벌을 포함한 다른 군집 생명체보다 고차적인 (ㄴ)이라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자연은 어떠한 이유 없이 뭔갈 만들어 내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 주장이다. 동물들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언어 능력을 갖추고 있다. 언어는 무엇이 유익하고 무엇이 유해한지, 그리고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밝히는 데 쓰인다. 인간과 다른 동물들의 차이점은 인간만이 좋음과 나쁨, 옳고 그름 등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인식의 공유에서 가정과 국가가 생성되는 것이다.

    훌륭한 삶, 정치적 동물

  • 23

    (파이널) 국가가 훌륭해지는 것은 행운의 소관이 아니라, (ㄱ)와/과 (ㄴ)의 산물이다. 훌륭한 국가가 되려면 국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훌륭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시민들은 모두 국정에 참여한다.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사람이 훌륭해질 수 있는지 고찰해야 한다.

    지혜, 윤리적 결단

  • 24

    (파이널) 모든 기술과 탐구, 또 모든 행동은 어떤 (ㄱ)을/를 목표로 한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ㄱ)이란 모든 것이 목표로 삼는 것이라고 한 주장은 옳다.

  • 25

    (파이널) '인간 자체(이데아)'에 있어서나 '인간'에 있어서나 하나의 동일한 설명, 즉 인간에 대한 설명이 적용되는 한, 그들이 '무엇 자체'를 가지고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 자체'나 '인간' 모두 인간인 한에 있어서는 아무 차이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좋음 자체'나 '좋음' 역시 좋음인 한에서 아무 차이가 없을 것이다.

    ㅇㄽㅌㅌㄽ

  • 26

    (파이널) 행복은 모든 것 가운데 가장 바람직한 것이요, 이러한 선들 중 (ㄱ)이다. 따라서 행복은 궁극적이고 자족적이며, 모든 행동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이 행복인가를 알려면 인간의 기능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인간만이 지닌 특별한 기능은 (ㄴ(내용))이다. 인간의 기능을 훌륭하게 수행하는 것은 바로 이성적 활동을 잘 수행하는 것이다. 어떠한 활동이 잘 수행되는 것은 그것에 알맞은 덕을 가지고 수행될 때이다. 그러므로 행복이란 (ㄷ(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최고선, 정신의 이성적 활동 능력, 덕과 일치하는 영혼(정신)의 활동

  • 27

    (파이널) 정의로운 일들을 행함으로써 정의로운 사람이 되며, 절제 있는 일들을 행함으로써 절제 있는 사람이 되고, 용감한 일들을 행함으로써 용감한 사람이 된다.

    ㅇㄽㅅㅅㅌㄹ

  • 28

    (파이널) 우리와 관련된 (ㄱ)은/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가 아니고 동일하지도 않다. 예를 들어 10은 많고 2는 적다면, 사물과 관련된 (ㄱ)으로 6을 취한다. 그러나 우리와 관련된 (ㄱ)은/는 이런 식으로 취하면 안 된다. 어떤 이에게 10근의 음식물은 먹기에 많고 2근의 음식물은 적다고 해서, 운동을 지도하는 자가 모든 사람에게 6근의 음식물을 먹으라고 지시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6근의 음식물은 노련한 레슬링 선수에게는 적겠지만 운동을 막 시작한 초보자에게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용

  • 29

    (파이널) 모든 행위와 겪음이 (ㄱ)을/를 받아들이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어떤 것들은 곧장 악행과 결부되는 이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앙심, 파렴치, 시기, 그리고 행동의 경우에는 간통, 도둑질, 살인 같은 것이 그것이다. 왜냐하면 이것들 모두와 비슷한 것들은, 그것들의 지나침과 모자람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 때문에 나쁜 것이라고 말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에 관련해서, 우리는 결코 옳을 수 없으며 언제나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중략) 오히려 이런 것들 중 하나를 행하는 것은 무조건적으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중용

  • 30

    (파이널) 필요 충족을 위해 자연적으로 형성된 공동체가 국가이고, 여러 가정으로 구성된 최초 공동체가 마을이다. 여러 부락으로 구성되는 완전한 공동체가 국가인데, 국가는 완전한 (ㄱ)이라는 최고 단계에 도달해 있다. 다시 말해 국가는 단순 생존을 위해 형성되었지만 (ㄴ)을/를 위해 존속하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국가는 자연의 산물이며, 인간은 본성적으로 국가 공동체를 구성하는 동물임이 분명하다.

    자급자족, 훌륭한 삶

  • 31

    (파이널) 행복은 모든 것 가운데 가장 바람직한 것이요, 여러 선들 중에서 최고의 선이다. 따라서 행복은 궁극적이고 자족적이며, 모든 행동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무엇이 행복인지 알려면 인간의 기능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인간만이 지닌 특별한 기능은 (ㄱ)이다. 인간의 기능을 훌륭하게 수행하는 것은 바로 이성적 활동을 잘 수행하는 것이다. 어떠한 활동이 잘 수행되는 것은 그것에 알맞은 덕을 가지고 수행될 때이다. 그러므로 행복이란 (ㄴ)이라고 할 수 있다. 행복이 덕을 따르는 활동이라면, 당연히 그것은 최고의 덕을 따르는 것이어야 한다. 최고의 덕을 따르는 이성의 활동은 진리에 대한 (ㄷ)이다. 인간은 이성적 (ㄷ) 활동을 할 때 행복할 수 있다. 행복은 순수한 (ㄷ)에 뒤따라 일어나는 게 아니라, 순수한 (ㄷ)속에 깃들어 있다. 이성에 따라 활동하고 그 이성을 가꾸고 자라게 하는 사람은 최선의 정신 상태에 있으며, 또한 신으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다.

    정신의 이성적 활동 능력, 덕과 일치하는 영혼의 활동, 관조

  • 32

    (파이널) 덕이란, 지니고 있으면 좋은 상태에 이르게 되고 또 그 좋은 상태의 기능을 잘 발휘시켜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눈이 지닌 덕은 눈과 눈의 기능을 좋게 한다. 눈의 덕을 통해 우리는 사물을 더 잘 보게 되니 말이다. 마찬가지로 말의 덕은 말을 좋은 말이 되게 하여 잘 달리게 하고, 말 타는 이를 잘 운반해 주며, 또 적의 공격에 잘 견디게 해준다. 이것을 모든 것에 공통적으로 적용시킬 수 있다면 인간의 덕은 인간을 선한 인간으로 만드는, 인간 고유의 기능을 잘 발휘하게 하는 성품이어야 한다. 덕에는 지성적인 덕과 품성적인 덕이 있다. 지성적 덕은 대체로 (ㄱ)에 의해 생기고 성장하며, 많은 경험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에 비해 품성적 덕은 (ㄴ)의 결과로 생긴다. 절제 있는 행위를 함으로써 절제 있게 되며, 용감한 행위를 함으로써 용감하게 되는 것이다. 품성적인 덕은 (ㄷ)을/를 택하여 행동하는 성품이다. 그것은 두 가지 악덕, 즉 지나침으로 말미암은 악덕과 모자람으로 말미암은 악덕 사이 중간이다.

    교육, 습관, 중용

  • 33

    (파이널) 어떤 사람이 올바르게 파악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자제력 없이 행동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가 생각한 것처럼, 참된 앎이 어떤 사람 속에 있음에도 다른 어떤 것이 그것을 지배하고 마치 노예처럼 이래저래 끌고 다닌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제력 없음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이러한 설명에 전적으로 맞서 싸운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그 누구도 참된 앎이 있으면서 그것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진 않으며, 오직 (ㄱ) 때문에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자제력 없음의 한 종류는 (ㄴ)이고, 다른 한 종류는 (ㄷ)이다. (ㄷ)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숙고를 통해 결심해 놓고도 감정 때문에 자신이 결정한 것에 머물지 못하며, (ㄴ)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숙고를 하지 않아 감정에 이끌린다.

    무지, 성급함, 유약함

  • 34

    (파이널) 마땅히 그래야 할 때, 또 마땅히 그래야 할 일에 대해, 마땅히 그래야 할 사람들에 대해, 마땅히 그래야 할 목적을 위해, 또 마땅히 그래야 할 방식으로 (ㄱ)을/를 갖는 것은 중간이자 최선이며, 바로 그런 것이 품성적 덕에 속하는 것이다. 품성적 덕은 (ㄱ)와/과 (ㄴ)와/과 관련된 것이며, 이것들에서 지나침과 모자람은 잘못을 범하는 반면, 중간적인 것은 칭찬 받고 올곧게 성공한다. 그러므로 품성적 덕은 중간적인 것을 겨냥하는 한 일종의 (ㄷ)이다.

    감정, 행위, 중용

  • 35

    절제와 용기, 그리고 다른 덕의 경우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무슨 일이든 회피하고 두려워하며 어떤 자리도 지켜내지 못하는 사람은 비겁한 사람이 되는 것이며, 이와 반대로 무슨 일이든 결코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모든 일에 뛰어드는 사람은 무모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즐거움에 탐닉하면서 어떤 것도 삼가지 않는 사람은 무절제한 사람이 되는 것이며, 이와 반대로 즐거움이라면 전부 회피하는 사람은 촌뜨기들처럼 일종의 목석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절제와 용기는 지나침과 모자람에 의해 파괴되고 (ㄱ)에 의해 보존된다.

    중용

  • 36

    (파이널) 다중들, 특히 대단히 통속적 사람들은 좋음과 행복을 즐거움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에 그들은 육체적인 감각의 만족과 관능적 향락을 추구하는 삶을 갈구한다. 하지만 이는 인간의 행복을 짐승들의 삶과 동일시하는 것으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좋음, 행복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인간적인 좋음(행복)은 (ㄱ)을/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덕(탁월성)에 따른 영혼의 활동

  • 37

    (파이널) (ㄱ)은/는 자연의 산물이며, 인간은 본성적으로 (ㄱ) 공동체를 구성하는 동물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어떤 사고가 아니라 본성으로 인하여 (ㄱ)이/가 없는 자는 인간 이하거나 인간 이상이다. 그런 자를 호메로스는 "친족도 없고 법률도 없고 가정도 없는 자"라고 비난한다. 본성이 그러한 자는 전쟁광이며, 장기판에서 혼자 앞서 나간 말처럼 독불장군이다. 이로써 인간이 벌이나 그 밖의 군서 동물보다 더 (ㄱ) 공동체를 추구하는 동물임이 분명해졌다. 자연은 어떤 목적 없이는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 주장이다. 인간과 다른 동물의 차이점은 (ㄴ(내용))이다. 그리고 이런 인식의 공유에서 가정과 (ㄱ)이/가 생성되는 것이다.

    국가, 인간만이 선악,시비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

  • 38

    (파이널) 좋음은 존재가 이야기되는 방식만큼이나 많은 방식으로 이야기된다. 좋음은 신과 지성이 좋다고 이야기될 때처럼 무엇임에서 좋다고 이야기되기도 하고, 탁월성이 좋다고 이야기될 때처럼 성질에 있어서 이야기되기도 하고, 적당량이 좋다고 할 때처럼 양에 있어서, 무엇에 대해 유용하다고 할 때처럼 관계에 있어서, 적절한 시기를 이야기할 때처럼 시간에 있어서, 적절한 거처를 이야기할 때처럼 장소에 있어서, 그리고 그 밖에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된다. 그렇기에 좋음이 어떤 공통적이며 단일한 보편자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좋음은 현실세계에서 너무도 다양하게 설명될 수 있는 존재기 때문에 현실세계와 유리된 채로 공통되고 단일한 좋음은 논할 수가 없다.

  • 39

    (파이널) 행복이 덕에 따르는 활동이라면, 그것은 당연히 최고의 덕(철학적 지혜)을 따라야 할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것들 중 지성(이성)이 최고이며, 지성(이성)이 상대하는 대상 또한 앎의 대상들 중 최고이므로 인간의 고유한 덕에 따르는 최고의 활동은 곧 (ㄱ) 활동이다. (ㄱ) 활동으로부터는 (ㄱ)한다는 사실 이외에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으므로 (ㄱ) 활동은 그 자체로서 사랑받는다.

    관조

  • 40

    (파이널) 만약 행위될 수 있는 것들의 목적이 있어서, 우리가 이것은 그 자체 때문에 바라고, 다른 것들은 이것 때문에 바라는 것이라면, 또 우리가 모든 것을 다른 것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것이 좋음이며 최상의 좋음일 것이다. 이것에 대한 앎은 우리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마치 과녁을 가지고 있는 궁수처럼 마땅히 그래야 할 바에 더 잘 적중시킬 수 있지 않겠는가? 모든 좋음들 중 최상의 것을 어떤 이름으로 부르는지에 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ㄱ)이다.

    행복

  • 41

    (파이널) 행복이 최고선이라는 주장은 아마 일반적으로 동의될 것으로 보이기는 하더라도, 보다 분명하게 행복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요구된다. 그런데 인간의 기능이 무엇인지 파악된다면 아마 이것이 이루어질 것이다. 인간의 좋음은 (ㄱ)이다. 따라서 행복은 (ㄱ)이다.

    덕에 따르는 영혼의 활동

  • 42

    (파이널) oo님께 행복은 (ㄱ)이므로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는 덕에 관해 고찰해야 합니다. 덕에는 지적인 덕과 도덕적 덕이 있습니다. 지적인 덕과 달리 도덕적 덕은 (ㄱ)의 결과로 생깁니다. 도덕적이라는 의미의 '에티케'도 (ㄱ)이라는 말인 '에토스'를 조금 고쳐서 만들어진 것이다. 본성적으로 생기는 것은 먼저 그 능력을 얻고 활동을 전개하지만 덕은 실천함으로써 얻습니다. 집을 지어 봄으로써 건축가가 되고 거문고를 탐으로써 악사가 되는 것처럼 절제 있는 행위를 함으로써 절제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좋은 (ㄱ)을/를 갖기 위해 노력해야 행복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습관

  • 43

    (파이널) 알맞은 때, 알맞은 것을, 알맞은 사람들에게, 알맞은 목적을 위해, 알맞은 방식으로 하는 것이 (ㄱ)이자 최선이고, 이것이 곧 덕의 특징이다.

    중용

  • 44

    (파이널) (ㄱ)은/는 가장 고귀하고, 가장 좋으며, 가장 즐거운 것으로, 이 세 가지는 델로스의 비명에 새겨진 글처럼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사실 '정의' '건강' '성취' 등은 모두 우리 삶에서 최선의 활동에 속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활동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하나의 활동을 (ㄱ)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ㄱ)은/는 명백하게 외적으로 좋음 또한 필요로 한다. (중략) 용모가 아주 추하거나 좋지 않은 태생이거나 자식 없이 혼자 사는 사람은 온전히 (ㄱ)하다고 말하기 어렵고, 아마도 아주 나쁜 친구들과 나쁜 자식만 있는 사람들의 경우 더욱 어렵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다른 사람들은 '탁월성'을 (ㄱ)와/과 동일시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행운'을 (ㄱ)와/과 동일시한다는 것이다.

    행복

  • 45

    (파이널) 국가 전체는 하나의 목적을 가지므로, 교육은 모두에게 똑같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그것은 공적이어야 한다. 모두가 자기 아이를 개별적으로 보살피고 자기가 최고라 생각하도록 가르치는 지금의 교육처럼 개인적이면 안 된다. 공익을 위해 필요한 것에 대한 훈련은 모두에게 같아야 한다.

    .

  • 46

    (파이널) 모든 학문과 기술에서 목적으로 하는 것은 선이다. 모든 기술과 학문 가운데 가장 권위 있는 것, 즉 정치학의 기술과 학문에서 목적으로 하는 선이 가장 좋은 선이다. 정치학 분야에서 선은 (ㄱ)이며 (ㄱ)은/는 공익을 증진하는 데 있다.

    정의

  • 47

    (파이널) 모든 기예와 탐구,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모든 행동과 선택은 어떤 좋음을 목표로 한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에서 좋음은 모든 사물이 목표로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목적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다. (중략) 그렇다면 만약 우리가 그 자체를 위해 욕구하고(다른 모든 것이 그것을 위해 욕구되는) 우리의 행동에 어떤 목적이 있다면, 그리고 만약 우리가 다른 어떤 것을 위해 모든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면 (중략) 분명 이것은 좋음이며 또한 최상의 좋음임에 틀림없다.

    .

  • 48

    (파이널) 행위를 통해 성취할 수 있는 모든 좋음 중 최상의 것이 무엇인지 논의해 보자. 그것을 어떤 이름으로 부르는 지는 대부분 사람이 동의한다. 대중과 교양 있는 사람 모두 그것을 (ㄱ)이라고 말하고 '잘 행동하는 것'과 '잘 사는 것'을 '(ㄱ)하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생각한다.

    행복

  • 49

    (파이널) 그렇다면 탁월성은 중간을 겨냥하는 것일 터이다. 내가 말하는 탁월성은 성격적 탁월성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감정들과 행위들에 관련하며, 이것들 안에 지나침과 모자람, 그리고 중간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두려워하는 일이나 대담해지는 일, 욕망하는 일이나 화내는 일, 또 연민을 갖는 일, 일반적으로 즐거워하거나 고통스러워하는 일은 너무 많이 할 수도 있고 너무 적게 할 수도 있지만, 양자 모두에 있어서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땅히 그래야 할 때, 또 마땅히 그래야 할 일에 대해, 마땅히 그래야 할 사람들에 대해, 마땅히 그래야 할 목적을 위해서, 또 마땅히 그래야 할 방식으로 감정을 갖는 것은 중간이자 최선이며, 바로 그러한 것이 탁월성에 속하는 것이다.

    .

  • 50

    (파이널) 어떤 사람의 실제 행위에 수반되는 즐거움과 고통을 그 사람의 (ㄱ)의 표시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육체적 즐거움들을 삼가고 이러한 삼감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은 절제 있는 사람이고, 이것을 답답해 하는 사람은 무절제한 사람이며, 무서운 것들을 견뎌내고 그러한 일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 혹은 적어도 고통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용감한 사람이며, 거기서 고통을 느끼는 사람은 비겁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성격적 탁월성은 즐거움과 고통에 관련한다. 우리가 나쁜 일들을 행하는 것은 즐거움 때문이며, 고귀한 일들을 멀리하는 것은 고통 때문이다. 그러한 까닭에 플라톤이 말하는 바와 같이 어렸을 때붙너 쭉 마땅히 기뻐해야 할 것에 기뻐하고, 마땅히 괴로워 해야 할 것에 고통을 느끼도록 어떤 방식으로 길러졌어야만 한다. 이것이야말로 올바른 교육이다.

    품성상태

  • 51

    (파이널) 훌륭함(덕)에 따르는 행위들은 그것을 기꺼이 행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자체로 즐거운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삶에서 즐거움을 어떠한 장식처럼 추가적으로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삶 자체 속에 즐거움을 가지고 있다. (중략) 고귀한 행위에서 기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다. 누구도 정의로운 일을 행하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을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며, 관대한 행위에서 기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을 관대한 사람이라고 부르진 않을 테니까. 다른 훌륭함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

  • 52

    (파이널) 덕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지성적 덕이며, 다른 하나는 품성적 덕이다. 지성적 덕은 그 기원과 성장을 주로 교육에 두고 있다. 그런 까닭에 그것은 경험과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 품성적 덕은 습관의 결과로 생겨난다. 품성적 덕은 어떤 것도 본성적으로 우리에게 생기는 것이 아니다. 본성적으로 생기는 것이라면, (ㄱ(내용))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돌은 본성적으로 아래로 움직이게 되어 있으므로 위로 움직일 수 있도록 습관을 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품성적 덕은 본성적으로 생겨나는 것도 아니요, 본성에 반하여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품성적 덕을 본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습관을 통해 완성한다.

    본성과 다르게 습관을 들일 수 없기

  • 53

    (파이널) 품성적 덕은 감정과 행동에 관계하고, 이 감정과 행동 속에 과도와 부족 및 (ㄱ)이/가 있다. 예를 들어 두려움과 대담함, 분노나 연민, 쾌락과 고통을 느끼는 일을 너무 많이 또는 너무 적게 할 수 있는데, 양쪽 모두 잘 하는 것이 아니다. 반면, 이것들을 마땅한 때에, 마땅한 일에 대해, 마땅한 사람들에 대해, 마땅히 추구해야 할 목적을 위해, 그리고 마땅한 방식으로 느끼는 것이 바로 (ㄱ)이자 최선이고, 이것이 덕의 특징이다.

    중용

  • 54

    (파이널) 우리가 탁월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은 여러 기예들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먼저 (ㄱ(내용))으로써 그것을 얻게 된다. 어떤 것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배우는 사람은 그것을 만들어 봄으로써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가령 건축가는 집을 지어 봄으로써 건축가가 되며, 하프 연주자는 하프를 타 봄으로써 하프 연주자가 되듯 말이다. 따라서 정의로운 일들을 행함으로써 정의로운 사람이 되며, 절제 있는 일들을 행함으로써 절제 있는 사람이 되며, 용감한 일들을 행함으로써 용감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 행위를 행함

  • 55

    (파이널) 원의 중심을 잡아내는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아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듯 (ㄱ)을/를 실천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화내는 일, 돈을 주거나 쓰는 일은 누구든 할 수 있는 쉬운 일이지만 마땅히 주어야 할 사람에게, 마땅한 만큼, 마땅한 때에, 마땅한 목적을 위해, 마땅한 방식으로 그렇게 하는 것은 결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며, 쉬운 일도 아니다.

    중용

  • 56

    (파이널) 덕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지성적 덕이며, 다른 하나는 품성적 덕이다. 지성적 덕은 그 기원과 성장을 주로 교육에 두고 있다. 그런 까닭에 그것은 경험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품성적 덕은 본성적으로 생겨나는 것도 아니요, 본성에 반해서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본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ㄱ)을/를 통해 완성시킨다.

    습관

  • 57

    (파이널) 신의 활동 (ㄱ)의 성질을 지니며, 신의 활동을 가장 많이 닮은 인간의 활동이 가장 행복한 것이다. 행복은 덕에 따르는 영혼의 활동이며, 최고의 덕을 따르는 이성의 활동은 진리에 대한 (ㄱ)이다. 철학적 지혜를 지닌 사람은 순수하게 (ㄱ)하며, 행복은 순수한 (ㄱ) 속에 들어 있다.

    관조

  • 58

    (파이널) 탁월성은 (ㄱ)와/과 결부된 품성 상태로, 우리와의 관계에서 성립하는 (ㄴ)에 의존한다. 알맞은 때에, 알맞은 것을, 알맞은 사람들에게, 알맞은 목적을 위해, 알맞은 방식으로 하는 것이 (ㄴ)이자 최선이고, 바로 그런 것이 탁월성에 속하는 것이다.

    합리적 선택, 중용

  • 59

    (파이널) 훌륭한 국가는 우연과 행운이 아니라 (ㄱ)와/과 (ㄴ)의 산물이다. 국가가 훌륭해지려면 국정에 참여하는 시민이 훌륭해야 한다. 따라서 시민 각자가 어떻게 해야 스스로가 훌륭해질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시민 각자가 훌륭하지 않아도 시민 전체가 훌륭할 수는 있겠지만, 시민 각자가 훌륭하면 더 바람직하다. 각자가 훌륭하면 전체도 훌륭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혜, 윤리적 결단

  • 60

    (파이널) 모든 국가는 분명 일종의 공동체이며, 모든 공동체는 어떤 (ㄱ)을/를 실현하기 위해 구성된다. 이렇듯 모든 공동체가 어떤 (ㄱ)을/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모든 공동체 중에서도 으뜸가며 다른 공동체를 모두 포괄하는 공동체야말로 분명 으뜸가는 (ㄱ)을 가장 훌륭하게 추구할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국가 혹은 국가 공동체이다.

  • 61

    (파이널) 영양 섭취나 성장, 감각은 식물이나 동물에게도 있다. 인간의 고유한 기능은 (ㄱ)을/를 가지는 것인데 이것은 (ㄱ)에 복종하고 (ㄱ)에 따라 사유하는 것이다.

    이성

  • 62

    (파이널) (ㄱ)을/를 가진 사람의 특성은 자기 자신에게 유익하고 좋은 것에 관해서 잘 살필 수 있는 것과 인간을 위해서 좋은 것과 나쁜 것에 관해서 참된 이치를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상태이다.

    실천적 지혜

  • 63

    (파이널) 의지가 나약한 사람(자제력 없는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행하는지, 또 왜 그것을 행하는지 어떤 방식으로든 알고 있고 자발적으로 행하므로 나쁜 사람은 아니다. 그의 (ㄱ) 자체는 훌륭하니까. 따라서 그는 반쯤 나쁜 사람이다. 그는 또 부정의한 사람이 아니다. 계획적으로 그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지가 나약한 사람들 중 한편은 자신들이 숙고한 것에 머물지 못하는 사람들이며, 다른 한편은 불같은 성질의 소유자로 아예 숙고하려 들지 않는 사람이다.

    합리적 선택

  • 64

    (파이널) 국가는 일상생활의 단순한 필수품을 충족시키려는 데서 출발하여 좋은 삶을 위하여 존재한다. 국가는 자연의 창조물이며, 인간이 본래 정치적 동물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인간은 벌이나 다른 군생 동물보다 더 정치적 동물이다. 자연은 무엇이든 쓸모없이 창조하지 않으며 인간은 자연이 언어의 자질을 부여한 유일한 동물이다. 소리를 그대로 내는 것은 쾌락과 고통을 나타내는 것으로 다른 동물도 할 수 있지만, 언어의 능력은 인간만이 갖는 것으로, 선과 악, 정의와 부정의를 드러낼 수 있다. 이러한 능력을 가진 인간이 국가를 형성한다. 국가는 좋은 삶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단지 삶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삶이 목적이라면 노예나 잔악한 동물들도 국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나 그들은 행복이나 자발적 선택의 삶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므로 국가를 형성하지 못한다. 국가는 부정의에 대한 동맹을 위해, 또는 교역과 상호 교류를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국가의 목적은 좋은 삶에 있다. 국가는 정치 공동체로서 단순한 공동 생활이 아니라 고귀한 행동을 위하여 존재한다.

    .

  • 65

    (파이널) (ㄱ) 사람은 뉘우칠 줄 모르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선택에 머물러 있으니까. 그러나 (ㄴ)사람은 뉘우칠 줄 안다. 이런 까닭에 (ㄱ) 사람은 고쳐질 가망이 없으나 (ㄴ) 사람은 고쳐질 가망이 있다. 자제력 없다는 것이 악덕이 아님은 명백하다. 왜냐하면 자제력 없다는 것은 선택에 반대되는 것인데 반해 악덕은 선택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ㄴ) 사람은 확신 없이 올바른 이치에 어긋나는 지나친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기 쉽고, (ㄱ) 사람은 본래 그런 쾌락을 추구하도록 된 사람인 까닭에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ㄴ) 사람은 쉽사리 마음을 돌리고 태도를 바꿀 수 있지만, (ㄱ) 사람은 그렇지 않다.

    방종한, 자제력 없는

  • 66

    (파이널) 실천적 지혜가 있으면서 자제하지 못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제력이 없는 사람은 실천할 힘이 없다. 영리한 사람이라도 자제력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자제력 없는 사람은, 마치 모든 올바른 법령과 훌륭한 법률을 가지고는 있으나 그것을 전혀 이용하지 않는 국가와 같다.

    실천적 지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무엇이 도덕적으로 옳은 것인지, 옳지 않은 것인지를 알고 이를 실천적 행동으로까지 옮길 수 있는 사람. 그러나 도덕적인 내용에 대해 알기만 하고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면 실천적 지혜가 있다고 볼 수 없음. 이 또한 자제력 없는 것(자제력 없는 사람은 실천적 지혜가 없다)

  • 67

    (파이널) 국가는 자연의 산물이며 단지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훌륭한 삶을 위해 존재한다. 명실상부한 국가라면 시민들의 (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탁월함

  • 68

    (파이널) 국가는 동등한 자들의 공동체이고, 그 목적은 가능한 최선의 삶이다. 그런데 최선의 삶은 (ㄱ)이고, (ㄱ)은/는 미덕의 구현과 완전한 실천에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ㄱ)에 참여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부분적으로 참여하거나 전혀 참여하지 못한다.

    행복

  • 69

    (파이널) 국가는 개인의 생존뿐만 아니라 (ㄱ)와/과 같은 좋은 삶을 충족할 때 자족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자족적인 국가는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결사체의 최후 형태이자 궁극 목적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최선의 단계이다.

    자아실현

  • 70

    (파이널) 국가가 훌륭해지는 것은 행운의 소관이 아니라, 지혜와 윤리적 결단의 산물이다. 훌륭한 국가가 되려면 국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훌륭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사람이 훌륭해질 수 있는지 고찰해야 한다. 사람은 세 가지를 통해 선하고 훌륭해지는데, 그 세 가지는 (ㄱ), (ㄴ), (ㄷ)이다. 훌륭한 사람은 이 세가지가 서로 조화를 이룬 사람이다.

    본성, 습관, 이성

  • 71

    (파이널) 시민들은 서로 다르지만 그들 모두에게는 공동체의 안정이라는 공통된 과제가 있는데, 여기서 공동체란 다름 아닌 (ㄱ)이다. 따라서 시민의 탁월함은 (ㄱ)와/과 관련이 있어야 한다. 또한 (ㄱ)은/는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가지인 만큼, 훌륭한 시민의 탁월함도 한 가지만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다. 그런데 훌륭한 사람은 단일하고 완벽한 탁월함을 지닌 사람이라고 우리는 말한다. 따라서 훌륭한 사람의 탁월함을 지니지 않아도 훌륭한 시민이 될 수 있음이 명백하다. 모든 시민이 똑같을 수 없는 만큼 시민의 탁월함과 훌륭한 사람의 탁월함은 동일할 수 없다. 훌륭한 시민의 탁월함은 모든 시민이 지녀야 하지만 훌륭한 국가의 시민들이라고 해서 모두 훌륭한 사람일 수 없는 만큼 훌륭한 사람의 탁월함을 지닌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체

  • 플라톤

    플라톤

    장윤영 · 55問 · 1年前

    플라톤

    플라톤

    55問 • 1年前
    장윤영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

    장윤영 · 100問 · 1年前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

    100問 • 1年前
    장윤영

    맹자2

    맹자2

    장윤영 · 8問 · 9ヶ月前

    맹자2

    맹자2

    8問 • 9ヶ月前
    장윤영

    노자2

    노자2

    장윤영 · 25問 · 7ヶ月前

    노자2

    노자2

    25問 • 7ヶ月前
    장윤영

    프로이트

    프로이트

    장윤영 · 22問 · 10ヶ月前

    프로이트

    프로이트

    22問 • 10ヶ月前
    장윤영

    자본주의

    자본주의

    장윤영 · 15問 · 10ヶ月前

    자본주의

    자본주의

    15問 • 10ヶ月前
    장윤영

    하이에크

    하이에크

    장윤영 · 55問 · 10ヶ月前

    하이에크

    하이에크

    55問 • 10ヶ月前
    장윤영

    베버

    베버

    장윤영 · 43問 · 10ヶ月前

    베버

    베버

    43問 • 10ヶ月前
    장윤영

    사회주의

    사회주의

    장윤영 · 42問 · 10ヶ月前

    사회주의

    사회주의

    42問 • 10ヶ月前
    장윤영

    니부어

    니부어

    장윤영 · 10問 · 9ヶ月前

    니부어

    니부어

    10問 • 9ヶ月前
    장윤영

    베카리아

    베카리아

    장윤영 · 7問 · 7ヶ月前

    베카리아

    베카리아

    7問 • 7ヶ月前
    장윤영

    프로젝트

    프로젝트

    장윤영 · 7問 · 9ヶ月前

    프로젝트

    프로젝트

    7問 • 9ヶ月前
    장윤영

    問題一覧

  • 1

    숙고에 의해 도달한 바를 유지하지 못하고 감정에 이끌리는 현상은?

    마음 약함에 대한 자제력 없음

  • 2

    성급함으로 인해 충분히 이성적으로 숙고하지 않아 감정에 굴복당하는 현상은?

    성급함에 의한 자제력 없음

  • 3

    자제력 없음과 무절제의 차이점을 서술하시오

    1. 자제력 없음: 무절제한 행위는 합리적 선택의 결과물이 아니다. 이성이 알려주는 올바른 행위의 이치를 알지만, 성급함이나 마음 약함으로 인해 감정에 져서 그러한 이치에 따라 행동하지 못한 것 후회할 줄 앎 -> 개선 가능성 있음 2. 무절제: 무절제한 행위를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것 후회할 줄 모름 -> 개선가능성 없음

  • 4

    자제력없음과 무절제의 공통점을 서술하시오

    1. 둘 다 자발적 행동 2. 둘 다 쾌고와 관계

  • 5

    실천적 지혜가 있는 사람이 동시에 자제력 없는 사람일 수 없는 이유를 2가지 서술하시오

    1. 실천적 지혜가 있는 사람은 품성적 덕을 지니는 사람. 실천적 지혜가 있는 사람은 올바른 목표를 향해 중용에 맞는 행위나 수단을 선택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 고로 실천적 지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품성적 덕이 있음. 자제력 없는 사람은 품성적 덕이 없음 2. 실천적 지혜는 아는 것을 바로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사람. 그러나 자제력 없는 사람은 아는 것을 바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함

  • 6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내린 가장 완전한 탁월성이란?

    지성

  • 7

    지성의 탁월성과의 동의어는?

    철학적 지혜

  • 8

    행복의 의미를 '철학적 지혜'를 활용하여 서술하시오

    철학적 지혜에 따른 관조적 활동

  • 9

    관조가 최고의 활동인 이유를 4가지 서술하시오

    1. 순수하고 완전한 최상의 즐거움을 인간에게 부여 2. 관조적 활동은 자족적: 삶을 유지할 필수적인 것을 제외하고 다른 무엇도 필요로 하지 않음 3. 완전성: 관조적 활동은 활동 그 자체가 목적 4. 관조는 사유활동이므로 전 생에 걸쳐 행해질 수 있음

  • 10

    행복이 덕에 따르는 활동이라면, 그것은 당연히 최고의 덕을 따라야 할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것들 중 (ㄱ)이/가 최고이며, (ㄱ)이/가 상대하는 대상 또한 앎의 대상들 중 최고이므로 인간의 고유한 덕에 따르는 최고의 활동은 곧 (ㄴ)이다. (ㄴ)으로부터 관조한다는 사실 이외에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으므로 (ㄴ)은/는 그 자체로서 사랑받는다.

    지성, 관조적 활동

  • 11

    (파이널) 정의로운 사람은 정의롭거나 절제 있는 행위를 알아야 하고, 합리적 선택에 의해 행위하되, 그 행위 자체때문에 선택해야 하며, 확고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행위해야 한다. 그러므로 어떤 행위들을 정의롭거나 절제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들이 정의로운 사람이거나 절제 있는 사람이 행했을 법한 그런 종류의 행위들일 때이다.

  • 12

    (파이널) 집을 지어봐야 건축가가 될 수 있고, 거문고를 타봐야 거문고 타는 악사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옳은 행위를 해봐야 올바르게 되고, 절제 있는 행위를 해봐야 절제 있게 되며, 용감한 행위를 해봐야 용감하게 된다.

  • 13

    (파이널) 어떤 행위가 옳다거나 절제 있다는 것은 그것이 옳은 사람 혹은 절제적인 사람이 항상 행하는 바와 같은 행위인 경우이다. 옳고 절제 있는 행위를 하는 사람이 곧 옳고 절제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러한 행위를 하되 옳고 절제적인 사람이 하듯 행하는 사람은 옳은 사람이요, 절제 있는 사람이다.

  • 14

    (파이널) 당사자들이 동등함에도 동등하지 않은 몫을, 혹은 동등하지 않은 사람들이 동등한 몫을 분배받아 갖게 되면 싸움과 불평이 생겨난다. 분배에서 정의로운 것은 어떤 가치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이 동의하지만, 그럼에도 모든 사람이 동일한 것을 가치로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

  • 15

    (파이널) 지난 편지에서 자네가 '정의란 무엇인지' 물었기에, 그에 대한 내 생각을 적어 보고자 하네. (ㄱ)은/는 보통 법을 지키는 것으로 나타나며, (ㄴ)은/는 공정성과 관련된다네. (ㄴ) 중 하나는 공동체에서 명예나 부의 분배와 관련된 것으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동등하다면 동등한 몫을, 동등하지 않다면 동등하지 않은 몫을 가지는 것이라네. 다른 하나는 상호 교섭에서의 동등함을 위해 바로 잡는 것으로, 행한 자들은 동등하게 취급되며 발생한 이익과 손해의 중간을 회복하려는 것이라네.

    일반적 정의, 부분적 정의

  • 16

    (파이널) (ㄱ)란 사람들이 옳은 일을 하도록 하고, 옳게 행동하게 하며, 옳은 것을 원하게 하는 성품입니다. 정의롭지 못한 여러 모습을 살펴보면 (ㄱ)의 의미를 쉽게 알 수 있다. 법을 지키지 않거나 욕심 많고, 불공정한 사람은 모두 정의롭지 못합니다. 공동체를 행복하게 만드는 조건이 많아지게 하는 행위는 정의롭습니다. (ㄱ)은/는 우리 이웃과의 관계에서 완전한 덕이며, 모든 덕 가운데 가장 큰 덕이라 생각됩니다. 저녁의 별도, 새벽의 별도 그 정의만큼 경탄할 만하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ㄱ)에는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이 있으며, 특수한 것에는 분배와 관련된 것과 교정과 관련한 것이 있습니다.

    정의

  • 17

    (파이널) (ㄱ)은/는 단지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훌륭한 삶을 위해 존재한다. (ㄱ)은/는 같은 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단순한 공동체가 아니며, 상호 간 부당 행위를 방지하고 교역을 촉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ㄱ)이/가 존재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그러나 그런 조건이 다 충족된다 해서 (ㄱ)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ㄱ)란 그 구성원의 가족들과 씨족들이 잘 살 수 있게 해 주기 위한 공동체이며, 그 목적은 완전하고 자족적인 삶이다.

    국가

  • 18

    (파이널) 최종적이고 완벽한 결사인 국가는 완전한 (ㄱ)을/를 이룬 것이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국가란 성장하는 단계에서 그저 생존만 추구하는 과정이라면 국가는 완전한 (ㄱ)을/를 이루지 못한다. 반면 국가가 완전히 성숙하고 나면 좋은 생활을 위하여 존재한다. 따라서 이 단계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ㄱ)한다고 할 수 있다.

    자급자족

  • 19

    (파이널) 인간은 천성적으로 (ㄱ)을/를 형성하는 존재이다.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자식, 주인과 노예 등 두 인간의 공동체가 가장 원초적이며, 이들이 합쳐져서 가정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 다음에는 마을이 구성되고 마침내 여러 마을이 모여서 도시 국가를 형성한다. 가정에서는 가장이 그 구성원들을 확고하게 지배해야 한다. (ㄱ)은/는 가정에 비해 훨씬 다양한 사람이 모인 공동체이다. 따라서 (ㄱ)은/는 각 개인의 능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국가

  • 20

    정의란 사람들이 옳은 일을 하도록 하고, 옳게 행동하게 하며, 옳은 것을 원하게 하는 성품이다. 정의롭지 못한 여러 가지 모습을 살펴보면 정의의 의미를 쉽게 알 수 있다. 법을 지키지 않거나, 욕심 많고, 불공정한 사람은 모두 정의롭지 못하다. 공동체를 행복하게 만드는 조건들이 많아지게 하는 행동은 정의롭다. 정의는 우리 이웃과의 관계에서 완전한 덕이며, 모든 덕 가운데 가장 크다. 정의의 영역에는 모든 덕이 다 들어있다. 정의의 덕이 완전한 까닭은 그 덕을 가진 사람이 자신뿐만 아니라 자기 이웃을 위해서도 그것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

  • 21

    (파이널) 아리스토텔레스는 본성과 탁월성의 측면에서 사회 정의를 강조하였다, 그는 인간은 본성상 정치적 동물이므로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고 공동체 안에서만 탁월성을 실현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국가 공동체에 대한 개인의 공적에 따라 명예나 돈, 혹은 공직 등을 분배해야 한다. 즉,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분배하는 것이 정의로운 것이므로 동등한 구성원이라면 동등한 몫을, 동등하지 않은 구성원이라면 동등하지 않은 몫을 분배해야 한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각자에게 주어야 할 그의 몫이 그가 받아야 할 몫에 비하여 과도하게 지나치거나 부족하지 않은 중용의 상태를 (ㄱ)라고 보았다. 또한 교섭에 있어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을 (ㄴ)라고 보았다.

    분배적 정의, 교정적 정의

  • 22

    (파이널) 국가는 단순한 생존을 위해 형성되지만 (ㄱ)을/를 위해 존속하는 것이다. 인간이 벌을 포함한 다른 군집 생명체보다 고차적인 (ㄴ)이라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자연은 어떠한 이유 없이 뭔갈 만들어 내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 주장이다. 동물들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언어 능력을 갖추고 있다. 언어는 무엇이 유익하고 무엇이 유해한지, 그리고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밝히는 데 쓰인다. 인간과 다른 동물들의 차이점은 인간만이 좋음과 나쁨, 옳고 그름 등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인식의 공유에서 가정과 국가가 생성되는 것이다.

    훌륭한 삶, 정치적 동물

  • 23

    (파이널) 국가가 훌륭해지는 것은 행운의 소관이 아니라, (ㄱ)와/과 (ㄴ)의 산물이다. 훌륭한 국가가 되려면 국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훌륭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시민들은 모두 국정에 참여한다.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사람이 훌륭해질 수 있는지 고찰해야 한다.

    지혜, 윤리적 결단

  • 24

    (파이널) 모든 기술과 탐구, 또 모든 행동은 어떤 (ㄱ)을/를 목표로 한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ㄱ)이란 모든 것이 목표로 삼는 것이라고 한 주장은 옳다.

  • 25

    (파이널) '인간 자체(이데아)'에 있어서나 '인간'에 있어서나 하나의 동일한 설명, 즉 인간에 대한 설명이 적용되는 한, 그들이 '무엇 자체'를 가지고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 자체'나 '인간' 모두 인간인 한에 있어서는 아무 차이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좋음 자체'나 '좋음' 역시 좋음인 한에서 아무 차이가 없을 것이다.

    ㅇㄽㅌㅌㄽ

  • 26

    (파이널) 행복은 모든 것 가운데 가장 바람직한 것이요, 이러한 선들 중 (ㄱ)이다. 따라서 행복은 궁극적이고 자족적이며, 모든 행동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이 행복인가를 알려면 인간의 기능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인간만이 지닌 특별한 기능은 (ㄴ(내용))이다. 인간의 기능을 훌륭하게 수행하는 것은 바로 이성적 활동을 잘 수행하는 것이다. 어떠한 활동이 잘 수행되는 것은 그것에 알맞은 덕을 가지고 수행될 때이다. 그러므로 행복이란 (ㄷ(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최고선, 정신의 이성적 활동 능력, 덕과 일치하는 영혼(정신)의 활동

  • 27

    (파이널) 정의로운 일들을 행함으로써 정의로운 사람이 되며, 절제 있는 일들을 행함으로써 절제 있는 사람이 되고, 용감한 일들을 행함으로써 용감한 사람이 된다.

    ㅇㄽㅅㅅㅌㄹ

  • 28

    (파이널) 우리와 관련된 (ㄱ)은/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가 아니고 동일하지도 않다. 예를 들어 10은 많고 2는 적다면, 사물과 관련된 (ㄱ)으로 6을 취한다. 그러나 우리와 관련된 (ㄱ)은/는 이런 식으로 취하면 안 된다. 어떤 이에게 10근의 음식물은 먹기에 많고 2근의 음식물은 적다고 해서, 운동을 지도하는 자가 모든 사람에게 6근의 음식물을 먹으라고 지시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6근의 음식물은 노련한 레슬링 선수에게는 적겠지만 운동을 막 시작한 초보자에게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용

  • 29

    (파이널) 모든 행위와 겪음이 (ㄱ)을/를 받아들이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어떤 것들은 곧장 악행과 결부되는 이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앙심, 파렴치, 시기, 그리고 행동의 경우에는 간통, 도둑질, 살인 같은 것이 그것이다. 왜냐하면 이것들 모두와 비슷한 것들은, 그것들의 지나침과 모자람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 때문에 나쁜 것이라고 말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에 관련해서, 우리는 결코 옳을 수 없으며 언제나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중략) 오히려 이런 것들 중 하나를 행하는 것은 무조건적으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중용

  • 30

    (파이널) 필요 충족을 위해 자연적으로 형성된 공동체가 국가이고, 여러 가정으로 구성된 최초 공동체가 마을이다. 여러 부락으로 구성되는 완전한 공동체가 국가인데, 국가는 완전한 (ㄱ)이라는 최고 단계에 도달해 있다. 다시 말해 국가는 단순 생존을 위해 형성되었지만 (ㄴ)을/를 위해 존속하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국가는 자연의 산물이며, 인간은 본성적으로 국가 공동체를 구성하는 동물임이 분명하다.

    자급자족, 훌륭한 삶

  • 31

    (파이널) 행복은 모든 것 가운데 가장 바람직한 것이요, 여러 선들 중에서 최고의 선이다. 따라서 행복은 궁극적이고 자족적이며, 모든 행동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무엇이 행복인지 알려면 인간의 기능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인간만이 지닌 특별한 기능은 (ㄱ)이다. 인간의 기능을 훌륭하게 수행하는 것은 바로 이성적 활동을 잘 수행하는 것이다. 어떠한 활동이 잘 수행되는 것은 그것에 알맞은 덕을 가지고 수행될 때이다. 그러므로 행복이란 (ㄴ)이라고 할 수 있다. 행복이 덕을 따르는 활동이라면, 당연히 그것은 최고의 덕을 따르는 것이어야 한다. 최고의 덕을 따르는 이성의 활동은 진리에 대한 (ㄷ)이다. 인간은 이성적 (ㄷ) 활동을 할 때 행복할 수 있다. 행복은 순수한 (ㄷ)에 뒤따라 일어나는 게 아니라, 순수한 (ㄷ)속에 깃들어 있다. 이성에 따라 활동하고 그 이성을 가꾸고 자라게 하는 사람은 최선의 정신 상태에 있으며, 또한 신으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다.

    정신의 이성적 활동 능력, 덕과 일치하는 영혼의 활동, 관조

  • 32

    (파이널) 덕이란, 지니고 있으면 좋은 상태에 이르게 되고 또 그 좋은 상태의 기능을 잘 발휘시켜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눈이 지닌 덕은 눈과 눈의 기능을 좋게 한다. 눈의 덕을 통해 우리는 사물을 더 잘 보게 되니 말이다. 마찬가지로 말의 덕은 말을 좋은 말이 되게 하여 잘 달리게 하고, 말 타는 이를 잘 운반해 주며, 또 적의 공격에 잘 견디게 해준다. 이것을 모든 것에 공통적으로 적용시킬 수 있다면 인간의 덕은 인간을 선한 인간으로 만드는, 인간 고유의 기능을 잘 발휘하게 하는 성품이어야 한다. 덕에는 지성적인 덕과 품성적인 덕이 있다. 지성적 덕은 대체로 (ㄱ)에 의해 생기고 성장하며, 많은 경험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에 비해 품성적 덕은 (ㄴ)의 결과로 생긴다. 절제 있는 행위를 함으로써 절제 있게 되며, 용감한 행위를 함으로써 용감하게 되는 것이다. 품성적인 덕은 (ㄷ)을/를 택하여 행동하는 성품이다. 그것은 두 가지 악덕, 즉 지나침으로 말미암은 악덕과 모자람으로 말미암은 악덕 사이 중간이다.

    교육, 습관, 중용

  • 33

    (파이널) 어떤 사람이 올바르게 파악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자제력 없이 행동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가 생각한 것처럼, 참된 앎이 어떤 사람 속에 있음에도 다른 어떤 것이 그것을 지배하고 마치 노예처럼 이래저래 끌고 다닌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제력 없음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이러한 설명에 전적으로 맞서 싸운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그 누구도 참된 앎이 있으면서 그것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진 않으며, 오직 (ㄱ) 때문에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자제력 없음의 한 종류는 (ㄴ)이고, 다른 한 종류는 (ㄷ)이다. (ㄷ)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숙고를 통해 결심해 놓고도 감정 때문에 자신이 결정한 것에 머물지 못하며, (ㄴ)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숙고를 하지 않아 감정에 이끌린다.

    무지, 성급함, 유약함

  • 34

    (파이널) 마땅히 그래야 할 때, 또 마땅히 그래야 할 일에 대해, 마땅히 그래야 할 사람들에 대해, 마땅히 그래야 할 목적을 위해, 또 마땅히 그래야 할 방식으로 (ㄱ)을/를 갖는 것은 중간이자 최선이며, 바로 그런 것이 품성적 덕에 속하는 것이다. 품성적 덕은 (ㄱ)와/과 (ㄴ)와/과 관련된 것이며, 이것들에서 지나침과 모자람은 잘못을 범하는 반면, 중간적인 것은 칭찬 받고 올곧게 성공한다. 그러므로 품성적 덕은 중간적인 것을 겨냥하는 한 일종의 (ㄷ)이다.

    감정, 행위, 중용

  • 35

    절제와 용기, 그리고 다른 덕의 경우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무슨 일이든 회피하고 두려워하며 어떤 자리도 지켜내지 못하는 사람은 비겁한 사람이 되는 것이며, 이와 반대로 무슨 일이든 결코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모든 일에 뛰어드는 사람은 무모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즐거움에 탐닉하면서 어떤 것도 삼가지 않는 사람은 무절제한 사람이 되는 것이며, 이와 반대로 즐거움이라면 전부 회피하는 사람은 촌뜨기들처럼 일종의 목석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절제와 용기는 지나침과 모자람에 의해 파괴되고 (ㄱ)에 의해 보존된다.

    중용

  • 36

    (파이널) 다중들, 특히 대단히 통속적 사람들은 좋음과 행복을 즐거움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에 그들은 육체적인 감각의 만족과 관능적 향락을 추구하는 삶을 갈구한다. 하지만 이는 인간의 행복을 짐승들의 삶과 동일시하는 것으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좋음, 행복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인간적인 좋음(행복)은 (ㄱ)을/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덕(탁월성)에 따른 영혼의 활동

  • 37

    (파이널) (ㄱ)은/는 자연의 산물이며, 인간은 본성적으로 (ㄱ) 공동체를 구성하는 동물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어떤 사고가 아니라 본성으로 인하여 (ㄱ)이/가 없는 자는 인간 이하거나 인간 이상이다. 그런 자를 호메로스는 "친족도 없고 법률도 없고 가정도 없는 자"라고 비난한다. 본성이 그러한 자는 전쟁광이며, 장기판에서 혼자 앞서 나간 말처럼 독불장군이다. 이로써 인간이 벌이나 그 밖의 군서 동물보다 더 (ㄱ) 공동체를 추구하는 동물임이 분명해졌다. 자연은 어떤 목적 없이는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 주장이다. 인간과 다른 동물의 차이점은 (ㄴ(내용))이다. 그리고 이런 인식의 공유에서 가정과 (ㄱ)이/가 생성되는 것이다.

    국가, 인간만이 선악,시비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

  • 38

    (파이널) 좋음은 존재가 이야기되는 방식만큼이나 많은 방식으로 이야기된다. 좋음은 신과 지성이 좋다고 이야기될 때처럼 무엇임에서 좋다고 이야기되기도 하고, 탁월성이 좋다고 이야기될 때처럼 성질에 있어서 이야기되기도 하고, 적당량이 좋다고 할 때처럼 양에 있어서, 무엇에 대해 유용하다고 할 때처럼 관계에 있어서, 적절한 시기를 이야기할 때처럼 시간에 있어서, 적절한 거처를 이야기할 때처럼 장소에 있어서, 그리고 그 밖에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된다. 그렇기에 좋음이 어떤 공통적이며 단일한 보편자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좋음은 현실세계에서 너무도 다양하게 설명될 수 있는 존재기 때문에 현실세계와 유리된 채로 공통되고 단일한 좋음은 논할 수가 없다.

  • 39

    (파이널) 행복이 덕에 따르는 활동이라면, 그것은 당연히 최고의 덕(철학적 지혜)을 따라야 할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것들 중 지성(이성)이 최고이며, 지성(이성)이 상대하는 대상 또한 앎의 대상들 중 최고이므로 인간의 고유한 덕에 따르는 최고의 활동은 곧 (ㄱ) 활동이다. (ㄱ) 활동으로부터는 (ㄱ)한다는 사실 이외에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으므로 (ㄱ) 활동은 그 자체로서 사랑받는다.

    관조

  • 40

    (파이널) 만약 행위될 수 있는 것들의 목적이 있어서, 우리가 이것은 그 자체 때문에 바라고, 다른 것들은 이것 때문에 바라는 것이라면, 또 우리가 모든 것을 다른 것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것이 좋음이며 최상의 좋음일 것이다. 이것에 대한 앎은 우리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마치 과녁을 가지고 있는 궁수처럼 마땅히 그래야 할 바에 더 잘 적중시킬 수 있지 않겠는가? 모든 좋음들 중 최상의 것을 어떤 이름으로 부르는지에 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ㄱ)이다.

    행복

  • 41

    (파이널) 행복이 최고선이라는 주장은 아마 일반적으로 동의될 것으로 보이기는 하더라도, 보다 분명하게 행복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요구된다. 그런데 인간의 기능이 무엇인지 파악된다면 아마 이것이 이루어질 것이다. 인간의 좋음은 (ㄱ)이다. 따라서 행복은 (ㄱ)이다.

    덕에 따르는 영혼의 활동

  • 42

    (파이널) oo님께 행복은 (ㄱ)이므로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는 덕에 관해 고찰해야 합니다. 덕에는 지적인 덕과 도덕적 덕이 있습니다. 지적인 덕과 달리 도덕적 덕은 (ㄱ)의 결과로 생깁니다. 도덕적이라는 의미의 '에티케'도 (ㄱ)이라는 말인 '에토스'를 조금 고쳐서 만들어진 것이다. 본성적으로 생기는 것은 먼저 그 능력을 얻고 활동을 전개하지만 덕은 실천함으로써 얻습니다. 집을 지어 봄으로써 건축가가 되고 거문고를 탐으로써 악사가 되는 것처럼 절제 있는 행위를 함으로써 절제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좋은 (ㄱ)을/를 갖기 위해 노력해야 행복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습관

  • 43

    (파이널) 알맞은 때, 알맞은 것을, 알맞은 사람들에게, 알맞은 목적을 위해, 알맞은 방식으로 하는 것이 (ㄱ)이자 최선이고, 이것이 곧 덕의 특징이다.

    중용

  • 44

    (파이널) (ㄱ)은/는 가장 고귀하고, 가장 좋으며, 가장 즐거운 것으로, 이 세 가지는 델로스의 비명에 새겨진 글처럼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사실 '정의' '건강' '성취' 등은 모두 우리 삶에서 최선의 활동에 속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활동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하나의 활동을 (ㄱ)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ㄱ)은/는 명백하게 외적으로 좋음 또한 필요로 한다. (중략) 용모가 아주 추하거나 좋지 않은 태생이거나 자식 없이 혼자 사는 사람은 온전히 (ㄱ)하다고 말하기 어렵고, 아마도 아주 나쁜 친구들과 나쁜 자식만 있는 사람들의 경우 더욱 어렵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다른 사람들은 '탁월성'을 (ㄱ)와/과 동일시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행운'을 (ㄱ)와/과 동일시한다는 것이다.

    행복

  • 45

    (파이널) 국가 전체는 하나의 목적을 가지므로, 교육은 모두에게 똑같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그것은 공적이어야 한다. 모두가 자기 아이를 개별적으로 보살피고 자기가 최고라 생각하도록 가르치는 지금의 교육처럼 개인적이면 안 된다. 공익을 위해 필요한 것에 대한 훈련은 모두에게 같아야 한다.

    .

  • 46

    (파이널) 모든 학문과 기술에서 목적으로 하는 것은 선이다. 모든 기술과 학문 가운데 가장 권위 있는 것, 즉 정치학의 기술과 학문에서 목적으로 하는 선이 가장 좋은 선이다. 정치학 분야에서 선은 (ㄱ)이며 (ㄱ)은/는 공익을 증진하는 데 있다.

    정의

  • 47

    (파이널) 모든 기예와 탐구,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모든 행동과 선택은 어떤 좋음을 목표로 한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에서 좋음은 모든 사물이 목표로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목적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다. (중략) 그렇다면 만약 우리가 그 자체를 위해 욕구하고(다른 모든 것이 그것을 위해 욕구되는) 우리의 행동에 어떤 목적이 있다면, 그리고 만약 우리가 다른 어떤 것을 위해 모든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면 (중략) 분명 이것은 좋음이며 또한 최상의 좋음임에 틀림없다.

    .

  • 48

    (파이널) 행위를 통해 성취할 수 있는 모든 좋음 중 최상의 것이 무엇인지 논의해 보자. 그것을 어떤 이름으로 부르는 지는 대부분 사람이 동의한다. 대중과 교양 있는 사람 모두 그것을 (ㄱ)이라고 말하고 '잘 행동하는 것'과 '잘 사는 것'을 '(ㄱ)하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생각한다.

    행복

  • 49

    (파이널) 그렇다면 탁월성은 중간을 겨냥하는 것일 터이다. 내가 말하는 탁월성은 성격적 탁월성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감정들과 행위들에 관련하며, 이것들 안에 지나침과 모자람, 그리고 중간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두려워하는 일이나 대담해지는 일, 욕망하는 일이나 화내는 일, 또 연민을 갖는 일, 일반적으로 즐거워하거나 고통스러워하는 일은 너무 많이 할 수도 있고 너무 적게 할 수도 있지만, 양자 모두에 있어서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땅히 그래야 할 때, 또 마땅히 그래야 할 일에 대해, 마땅히 그래야 할 사람들에 대해, 마땅히 그래야 할 목적을 위해서, 또 마땅히 그래야 할 방식으로 감정을 갖는 것은 중간이자 최선이며, 바로 그러한 것이 탁월성에 속하는 것이다.

    .

  • 50

    (파이널) 어떤 사람의 실제 행위에 수반되는 즐거움과 고통을 그 사람의 (ㄱ)의 표시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육체적 즐거움들을 삼가고 이러한 삼감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은 절제 있는 사람이고, 이것을 답답해 하는 사람은 무절제한 사람이며, 무서운 것들을 견뎌내고 그러한 일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 혹은 적어도 고통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용감한 사람이며, 거기서 고통을 느끼는 사람은 비겁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성격적 탁월성은 즐거움과 고통에 관련한다. 우리가 나쁜 일들을 행하는 것은 즐거움 때문이며, 고귀한 일들을 멀리하는 것은 고통 때문이다. 그러한 까닭에 플라톤이 말하는 바와 같이 어렸을 때붙너 쭉 마땅히 기뻐해야 할 것에 기뻐하고, 마땅히 괴로워 해야 할 것에 고통을 느끼도록 어떤 방식으로 길러졌어야만 한다. 이것이야말로 올바른 교육이다.

    품성상태

  • 51

    (파이널) 훌륭함(덕)에 따르는 행위들은 그것을 기꺼이 행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자체로 즐거운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삶에서 즐거움을 어떠한 장식처럼 추가적으로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삶 자체 속에 즐거움을 가지고 있다. (중략) 고귀한 행위에서 기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다. 누구도 정의로운 일을 행하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을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며, 관대한 행위에서 기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을 관대한 사람이라고 부르진 않을 테니까. 다른 훌륭함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

  • 52

    (파이널) 덕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지성적 덕이며, 다른 하나는 품성적 덕이다. 지성적 덕은 그 기원과 성장을 주로 교육에 두고 있다. 그런 까닭에 그것은 경험과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 품성적 덕은 습관의 결과로 생겨난다. 품성적 덕은 어떤 것도 본성적으로 우리에게 생기는 것이 아니다. 본성적으로 생기는 것이라면, (ㄱ(내용))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돌은 본성적으로 아래로 움직이게 되어 있으므로 위로 움직일 수 있도록 습관을 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품성적 덕은 본성적으로 생겨나는 것도 아니요, 본성에 반하여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품성적 덕을 본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습관을 통해 완성한다.

    본성과 다르게 습관을 들일 수 없기

  • 53

    (파이널) 품성적 덕은 감정과 행동에 관계하고, 이 감정과 행동 속에 과도와 부족 및 (ㄱ)이/가 있다. 예를 들어 두려움과 대담함, 분노나 연민, 쾌락과 고통을 느끼는 일을 너무 많이 또는 너무 적게 할 수 있는데, 양쪽 모두 잘 하는 것이 아니다. 반면, 이것들을 마땅한 때에, 마땅한 일에 대해, 마땅한 사람들에 대해, 마땅히 추구해야 할 목적을 위해, 그리고 마땅한 방식으로 느끼는 것이 바로 (ㄱ)이자 최선이고, 이것이 덕의 특징이다.

    중용

  • 54

    (파이널) 우리가 탁월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은 여러 기예들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먼저 (ㄱ(내용))으로써 그것을 얻게 된다. 어떤 것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배우는 사람은 그것을 만들어 봄으로써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가령 건축가는 집을 지어 봄으로써 건축가가 되며, 하프 연주자는 하프를 타 봄으로써 하프 연주자가 되듯 말이다. 따라서 정의로운 일들을 행함으로써 정의로운 사람이 되며, 절제 있는 일들을 행함으로써 절제 있는 사람이 되며, 용감한 일들을 행함으로써 용감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 행위를 행함

  • 55

    (파이널) 원의 중심을 잡아내는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아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듯 (ㄱ)을/를 실천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화내는 일, 돈을 주거나 쓰는 일은 누구든 할 수 있는 쉬운 일이지만 마땅히 주어야 할 사람에게, 마땅한 만큼, 마땅한 때에, 마땅한 목적을 위해, 마땅한 방식으로 그렇게 하는 것은 결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며, 쉬운 일도 아니다.

    중용

  • 56

    (파이널) 덕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지성적 덕이며, 다른 하나는 품성적 덕이다. 지성적 덕은 그 기원과 성장을 주로 교육에 두고 있다. 그런 까닭에 그것은 경험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품성적 덕은 본성적으로 생겨나는 것도 아니요, 본성에 반해서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본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ㄱ)을/를 통해 완성시킨다.

    습관

  • 57

    (파이널) 신의 활동 (ㄱ)의 성질을 지니며, 신의 활동을 가장 많이 닮은 인간의 활동이 가장 행복한 것이다. 행복은 덕에 따르는 영혼의 활동이며, 최고의 덕을 따르는 이성의 활동은 진리에 대한 (ㄱ)이다. 철학적 지혜를 지닌 사람은 순수하게 (ㄱ)하며, 행복은 순수한 (ㄱ) 속에 들어 있다.

    관조

  • 58

    (파이널) 탁월성은 (ㄱ)와/과 결부된 품성 상태로, 우리와의 관계에서 성립하는 (ㄴ)에 의존한다. 알맞은 때에, 알맞은 것을, 알맞은 사람들에게, 알맞은 목적을 위해, 알맞은 방식으로 하는 것이 (ㄴ)이자 최선이고, 바로 그런 것이 탁월성에 속하는 것이다.

    합리적 선택, 중용

  • 59

    (파이널) 훌륭한 국가는 우연과 행운이 아니라 (ㄱ)와/과 (ㄴ)의 산물이다. 국가가 훌륭해지려면 국정에 참여하는 시민이 훌륭해야 한다. 따라서 시민 각자가 어떻게 해야 스스로가 훌륭해질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시민 각자가 훌륭하지 않아도 시민 전체가 훌륭할 수는 있겠지만, 시민 각자가 훌륭하면 더 바람직하다. 각자가 훌륭하면 전체도 훌륭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혜, 윤리적 결단

  • 60

    (파이널) 모든 국가는 분명 일종의 공동체이며, 모든 공동체는 어떤 (ㄱ)을/를 실현하기 위해 구성된다. 이렇듯 모든 공동체가 어떤 (ㄱ)을/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모든 공동체 중에서도 으뜸가며 다른 공동체를 모두 포괄하는 공동체야말로 분명 으뜸가는 (ㄱ)을 가장 훌륭하게 추구할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국가 혹은 국가 공동체이다.

  • 61

    (파이널) 영양 섭취나 성장, 감각은 식물이나 동물에게도 있다. 인간의 고유한 기능은 (ㄱ)을/를 가지는 것인데 이것은 (ㄱ)에 복종하고 (ㄱ)에 따라 사유하는 것이다.

    이성

  • 62

    (파이널) (ㄱ)을/를 가진 사람의 특성은 자기 자신에게 유익하고 좋은 것에 관해서 잘 살필 수 있는 것과 인간을 위해서 좋은 것과 나쁜 것에 관해서 참된 이치를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상태이다.

    실천적 지혜

  • 63

    (파이널) 의지가 나약한 사람(자제력 없는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행하는지, 또 왜 그것을 행하는지 어떤 방식으로든 알고 있고 자발적으로 행하므로 나쁜 사람은 아니다. 그의 (ㄱ) 자체는 훌륭하니까. 따라서 그는 반쯤 나쁜 사람이다. 그는 또 부정의한 사람이 아니다. 계획적으로 그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지가 나약한 사람들 중 한편은 자신들이 숙고한 것에 머물지 못하는 사람들이며, 다른 한편은 불같은 성질의 소유자로 아예 숙고하려 들지 않는 사람이다.

    합리적 선택

  • 64

    (파이널) 국가는 일상생활의 단순한 필수품을 충족시키려는 데서 출발하여 좋은 삶을 위하여 존재한다. 국가는 자연의 창조물이며, 인간이 본래 정치적 동물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인간은 벌이나 다른 군생 동물보다 더 정치적 동물이다. 자연은 무엇이든 쓸모없이 창조하지 않으며 인간은 자연이 언어의 자질을 부여한 유일한 동물이다. 소리를 그대로 내는 것은 쾌락과 고통을 나타내는 것으로 다른 동물도 할 수 있지만, 언어의 능력은 인간만이 갖는 것으로, 선과 악, 정의와 부정의를 드러낼 수 있다. 이러한 능력을 가진 인간이 국가를 형성한다. 국가는 좋은 삶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단지 삶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삶이 목적이라면 노예나 잔악한 동물들도 국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나 그들은 행복이나 자발적 선택의 삶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므로 국가를 형성하지 못한다. 국가는 부정의에 대한 동맹을 위해, 또는 교역과 상호 교류를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국가의 목적은 좋은 삶에 있다. 국가는 정치 공동체로서 단순한 공동 생활이 아니라 고귀한 행동을 위하여 존재한다.

    .

  • 65

    (파이널) (ㄱ) 사람은 뉘우칠 줄 모르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선택에 머물러 있으니까. 그러나 (ㄴ)사람은 뉘우칠 줄 안다. 이런 까닭에 (ㄱ) 사람은 고쳐질 가망이 없으나 (ㄴ) 사람은 고쳐질 가망이 있다. 자제력 없다는 것이 악덕이 아님은 명백하다. 왜냐하면 자제력 없다는 것은 선택에 반대되는 것인데 반해 악덕은 선택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ㄴ) 사람은 확신 없이 올바른 이치에 어긋나는 지나친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기 쉽고, (ㄱ) 사람은 본래 그런 쾌락을 추구하도록 된 사람인 까닭에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ㄴ) 사람은 쉽사리 마음을 돌리고 태도를 바꿀 수 있지만, (ㄱ) 사람은 그렇지 않다.

    방종한, 자제력 없는

  • 66

    (파이널) 실천적 지혜가 있으면서 자제하지 못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제력이 없는 사람은 실천할 힘이 없다. 영리한 사람이라도 자제력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자제력 없는 사람은, 마치 모든 올바른 법령과 훌륭한 법률을 가지고는 있으나 그것을 전혀 이용하지 않는 국가와 같다.

    실천적 지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무엇이 도덕적으로 옳은 것인지, 옳지 않은 것인지를 알고 이를 실천적 행동으로까지 옮길 수 있는 사람. 그러나 도덕적인 내용에 대해 알기만 하고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면 실천적 지혜가 있다고 볼 수 없음. 이 또한 자제력 없는 것(자제력 없는 사람은 실천적 지혜가 없다)

  • 67

    (파이널) 국가는 자연의 산물이며 단지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훌륭한 삶을 위해 존재한다. 명실상부한 국가라면 시민들의 (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탁월함

  • 68

    (파이널) 국가는 동등한 자들의 공동체이고, 그 목적은 가능한 최선의 삶이다. 그런데 최선의 삶은 (ㄱ)이고, (ㄱ)은/는 미덕의 구현과 완전한 실천에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ㄱ)에 참여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부분적으로 참여하거나 전혀 참여하지 못한다.

    행복

  • 69

    (파이널) 국가는 개인의 생존뿐만 아니라 (ㄱ)와/과 같은 좋은 삶을 충족할 때 자족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자족적인 국가는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결사체의 최후 형태이자 궁극 목적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최선의 단계이다.

    자아실현

  • 70

    (파이널) 국가가 훌륭해지는 것은 행운의 소관이 아니라, 지혜와 윤리적 결단의 산물이다. 훌륭한 국가가 되려면 국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훌륭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사람이 훌륭해질 수 있는지 고찰해야 한다. 사람은 세 가지를 통해 선하고 훌륭해지는데, 그 세 가지는 (ㄱ), (ㄴ), (ㄷ)이다. 훌륭한 사람은 이 세가지가 서로 조화를 이룬 사람이다.

    본성, 습관, 이성

  • 71

    (파이널) 시민들은 서로 다르지만 그들 모두에게는 공동체의 안정이라는 공통된 과제가 있는데, 여기서 공동체란 다름 아닌 (ㄱ)이다. 따라서 시민의 탁월함은 (ㄱ)와/과 관련이 있어야 한다. 또한 (ㄱ)은/는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가지인 만큼, 훌륭한 시민의 탁월함도 한 가지만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다. 그런데 훌륭한 사람은 단일하고 완벽한 탁월함을 지닌 사람이라고 우리는 말한다. 따라서 훌륭한 사람의 탁월함을 지니지 않아도 훌륭한 시민이 될 수 있음이 명백하다. 모든 시민이 똑같을 수 없는 만큼 시민의 탁월함과 훌륭한 사람의 탁월함은 동일할 수 없다. 훌륭한 시민의 탁월함은 모든 시민이 지녀야 하지만 훌륭한 국가의 시민들이라고 해서 모두 훌륭한 사람일 수 없는 만큼 훌륭한 사람의 탁월함을 지닌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