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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버
43問 • 10ヶ月前
  • 장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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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問題一覧

  • 1

    베버가 이야기한 자본주의 정신의 특징을 5가지 서술하시오

    1. 이윤추구 행위를 윤리적 차원에서 옹호 2. 노동자의 근면성 강조 3. 엄격한 규율과 훈련에 의한 경제 행위 추구 4. 보편적 경제 윤리에 기초 5. 금욕주의적 직업 윤리로 드러남

  • 2

    칼뱅의 예정설은 개인의 (ㄱ)을/를 낳는 결과를 가져옴

    내면적 고립감

  • 3

    칼뱅의 예정설은 근대 합리화의 본질인 (ㄱ)을/를 완결하는 효과를 가져옴

    탈주술화

  • 4

    개인은 (ㄱ) 속에서 신과 직접적으로 대면하고자 함 -> 직접적 대면의 관계 설정은 (ㄴ)의 역할을 부정

    내면적 고립감, 교회

  • 5

    칼뱅의 예정설은 (ㄱ)을/를 형성했으며 (ㄴ) 문화를 배척하는 심성을 강화

    개인주의, 감각적

  • 6

    칼뱅은 내면적 고립감이 감각문화를 거부하는 (ㄱ) 태도를 발생시킴

    청교도주의적

  • 7

    현세의 목적은 (ㄱ)을/를 증대시키는 것. 따라서 세속적 직업 노동은 단순한 생계유지가 아닌 (ㄱ)을/를 증대시키는 것으로 여겨짐

    신의 영광

  • 8

    칼뱅: 세속적 직업 노동은 믿음과 더불어 (ㄱ)에 대한 자기 확신의 수단

    구원

  • 9

    직업 노동을 통해 획득한 성과를 신에 의해 선택되었음을 알려주는 (ㄱ)의 확증으로 받아들임

    구원

  • 10

    프로테스탄티즘 금욕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신의 소명

  • 11

    직업 활동은 (ㄱ)을/를 방지하는 수단이자 (ㄴ)

    부정한 생활, 신의 소명

  • 12

    직업 노동을 통한 이윤추구를 (ㄱ)(으)로 간주

    신의 명령

  • 13

    전문화된 직업 활동과 이윤추구를 위한 기업가의 활동을 (ㄱ)(이)라는 관점에서 윤리적으로 정당화

    신의 소명

  • 14

    인간은 신의 소명의 부르심을 받고 직업활동을 이어나가게 되면 (ㄱ)이/가 촉진되어 자본주의의 발전을 가져오게 된다.

    노동 생산성

  • 15

    정치는 (ㄱ)을/를 수단으로 하는 활동

    물리적 강제력

  • 16

    정치권력의 본질은?

    물리적 강제력

  • 17

    국가는 특정 영토 내에서 정당한 (ㄱ)의 독점을 성공적으로 관철시킨 유일한 인간 공동체

    물리적 강제력

  • 18

    베버는 직업 정치가의 자질로 (ㄱ) (ㄴ) (ㄷ)을/를 제시

    열정, 책임감, 균형감각

  • 19

    직업 정치가의 열정은 합법적 폭력 행사권이라는 수단 때문에 (ㄱ)에 통제되고 조절되지 않으면 위험. 따라서 직업 정치가의 열정은 단순한 열정이 아니라 (ㄱ)을/를 일깨우며 나아가 (ㄱ)이/가 행동을 주도하는 열정이어야 함

    책임 의식

  • 20

    책임의식을 단련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이며, 내적 집중과 평정 속에서 현실을 관조하는 능력, 즉 사물과 사람에 대해 거리를 두는 능력을 이르는 말은?

    균형감각

  • 21

    정치는 언제나 자신의 목적을 위해 (ㄱ)을/를 본질로 하는 정치 권력을 수단으로 사용함. 직업 정치가는 폭력이라는 악마적 (ㄴ)을/를 가지고, 천사적 대의의 실현을 목표로 삼음. 따라서 직업 정치가는 (ㄷ)와/과 (ㄴ)의 극단적 괴리를 명확히 인식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함

    폭력성, 수단, 목적

  • 22

    개인과 국가의 도덕적 기준은 다름. 국가의 성공적 정치 행위는 (ㄱ)(이)라는 원칙을 따름

    국가의 생존

  • 23

    국가의 (ㄱ) 정당성과 (ㄴ) 정당성을 모두 중시할 것

    절차적, 결과적

  • 24

    지금까지 말한 것을 요약한다면, 현세적인 프로테스탄트의 금욕은 전력을 다해 재산을 낭비하는 향락에 반대해왔고 소비, 특히 사치재 소비를 봉쇄해 버렸다. 반면에 이 (ㄱ)은/는 재화의 획득을 전통주의적인 윤리의 장에서 해방하는 심리적 결과를 낳았으며, 이익의 추구를 합법화했을 뿐 아니라 직접 신의 뜻이라고 간주함으로써 이익 추구에 대한 질곡을 뚫고 나왔다.

    금욕

  • 25

    신은 그리스도교인의 사회적 활동과 성취를 요구한다. 신은 그리스도교인의 삶이 자신의 계명에 따라 사회적으로 형성되어 자신의 영광을 증대하는 목적에 이바지하길 원한다. 칼뱅주의자들이 세상에서 행하는 사회적 노동은 어디까지나 (ㄱ)을/를 더하기 위한 노동일 뿐이다. 그러므로 사회 전체의 현세적 삶에 이바지하는 직업 노동도 역시 그러한 성격을 띤다. 이웃 사랑은 일차적으로 자연법에 의해 주어진 작업 과제의 이행에서 나타나며 이 과정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질서의 합리적 형성에 이바지하는 성격을 띠게 된다.

    신의 영광

  • 26

    근대적 자본주의 정신, 그리고 그 뿐만 아니라 근대적 문화에 구성적 요소 중 하나인 직업 사상에 입각한 합리적 생활 방식은 기독교의 (ㄱ) 정신에서 탄생한 것

    금욕

  • 27

    신은 여러 가지 삶의 계층과 삶의 양식들을 구분해 놓으심으로써 각 사람이 해야 할 일의 순서를 정해 두셨습니다. 그와 같은 삶의 양식들을 (ㄱ)(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각 사람들은 자신의 일과 직업을 신께서 정해주신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소명

  • 28

    칼뱅에 따르면 세계는 오직 (ㄱ)에 봉사하도록 정해져 있고 선택된 그리스도인은 오직 신의 율법을 집행하여 (ㄱ)을/를 각자의 몫만큼 세계에 증대하도록 정해져 있다. 신은 그리스도교의 사회적 실행을 요구한다. 왜냐면 신은 사회적 형성이 자신의 율법에 맞게 이루어져 자신의 목적에 일치하길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칼뱅에게 있어 사회적 직업 활동은 오직 신이 부여한 (ㄴ)을/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일 뿐이다.

    신의 영광, 소명

  • 29

    직업윤리에서 루터의 큰 공헌이라면 모든 직업은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표명이다. 루터는 신에게 철저히 (ㄱ)하는 신앙의 응답에서 자유로운 (ㄱ)와/과 세계의 관계가 생겨나는 것으로 신학의 근거를 이해하고, 여기서 모든 직업을 하나님의 (ㄴ)에 의한 (ㄱ) 관계로 설명했다. 루터의 소명론에서 직업과 관련된 노동의 의미가 이웃에 대한 (ㄱ)의 측면을 강조하여 세속적인 도덕과 질서의 개념으로 형식화되었다면 칼뱅의 사상은 인간의 궁극적 운명은 신의 손에 있음을 강조한 (ㄷ)에 바탕을 둔 금욕주의와 자본주의가 결합하여 자본주의적 청교도 노동윤리로 발전한 것이다. 칼뱅에 의하면 성실한 (ㄹ)은 자신이 선택한 자라는 확신을 갖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며, (ㄹ)에 의해서만 종교상의 의혹을 떨치고 은혜의 확실성을 확신할 수 있다.

    봉사, 소명, 예정론, 직업노동

  • 30

    베버는 소명적 직업관과 세속적 금욕주의에 내포된 엄격한 규율성을 (ㄱ)의 관점에서 해명하고 있다. 첫째 금욕 정신을 통한 자기 규제는 충동적, 감정적 요소에 대한 제어라는 측면에서 (ㄱ)을/를 갖는다. 둘째 이러한 자기 통제가 무계획적이고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ㄱ)을/를 갖는다. 베버가 말하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세속적 금욕주의는 이런 의미에서 합리적 금욕주의로 명명될 수 있으며 이것은 결국 합리적 자본주의 정신을 의미하는 것이다. 베버의 근대 자본주의 정신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 (ㄱ)이지만, 경제적 가치 선택과 결정을 좌우하는 이러한 (ㄱ)은/는 인간의 사고와 행위의 준칙인 윤리적 요소에 의해 움직일 수밖에 없다. 베버의 자본주의 정신은 금욕적 프로테스탄티즘의 신앙과 상호연관 속에서 싹터 근대 자본주의로 옮겨 오면서 일에 대한 책임의 기초를 두었다.

    합리성

  • 31

    획득에의 충동, 이윤에 대한 추구, 그리고 가능한 많은 양의 화폐에 대한 추구 그 자체는 자본주의와 관계가 없다. 이 충동은 웨이터, 의사, 마부, 예술가, 창녀, 부패관리, 군인, 귀족, 십자군, 도박꾼, 거지 등에게도 존재하고 있으며 존재해 왔다. 아마도 이 충동은 그것의 객관적 가능성이 있는 혹은 있었던 곳이라면 지구상의 모든 나라에 그리고 모든 시대에 모든 종류와 조건의 인간들에게 공통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이러한 소박한 생각이 단적으로 포기되어야 함은 문화사 연구에서 극히 초기에 가르쳐져야 한다. 획득을 위한 무제한적 탐욕은 결코 자본주의와 동일한 것이 아니며 자본주의 정신과는 더욱더 동일한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아마도 이러한 비합리적 충동의 절제 혹은 적어도 그러한 충동의 합리적 완화와 동일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자본주의는 지속적이고 합리적인 자본주의적 경영에 의한 이윤 추구 그리고 영원히 재생되는 이윤의 추구와 동일한 것이다. 이는 반드시 그러해야만 하는데 왜냐면 전적으로 자본주의적인 사회 질서 안에서 이윤 획득을 위한 자신의 기회를 이용하지 않는 개별적인 자본주의 기업은 소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32

    이 윤리의 최고선은 다음과 같다. 즉, 돈을 벌고 더욱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적나라한 향락을 엄격히 피하면서 행복주의적이고 쾌락주의적인 모든 단점을 전적으로 벗어나 돈 버는 것을 그저 자기 목적으로 여기므로 개인의 행복과 효용에 대립되는 초월적이고 단적으로 비합리적인 것으로 보일 정도다. 인간은 돈벌이를 자신의 생활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의 목적 자체로 여기는 것이다. 화폐 취득은 근대적 경제 질서 안에서 직업상 유능함의 표현이며, 이 유능함은 쉽게 알 수 있듯이 프랭클린 도덕의 실질적인 알파와 오메가이다. 사실상 오늘날 익숙하지만 실제로는 결코 자명한 것이 아닌 이 독특한 직업의무라는 사상은 개인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즉 자신의 직업적 활동과 무관하게 받아들여야만 하는 의무이다. 이 의무는 직업이 무엇이든, 특히 직업이 자신의 순수한 노동력의 사용인지 아니면 자신의 소유물의 사용인지와 무관하게 성립한다. 이러한 사상은 자본주의 문화의 사회윤리에 특징적인 것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그 윤리에 대해 구성적 중요성을 갖는다.

  • 33

    화폐 취득상 자기 이익 추구의 절대적인 파렴치가 보편적으로 지배하는 현상은 바로 부르주아적.자본주의적 발전이 뒤처지는 나라에서 매우 특징적 현상이었다. 모든 공장주가 알고 있듯 그러한 나라의 노동자들에게 양심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 그 나라의 자본주의 발달을 가로막는 주요 원인이었고, 현재에도 어느 정도는 그러하다. 금전욕에 거리낌 없이 매달리는 사람은 결코 대중현상인 특정한 근대 자본주의 정신을 낳은 경향의 대표자가 아니었다.

  • 34

    칼뱅에 따르면 세계는 오직 (ㄱ)에 봉사하도록 정해져있고, 선택된 그리스도인은 오직 신의 율법을 집행하여 (ㄱ)을/를 각자의 몫만큼 세계에 증대하도록 정해져 있다. 신은 그리스도교의 사회적 실행을 요구한다. 왜냐면 신은 사회적 형성이 자신의 율법에 맞게 이루어져 자신의 목적에 일치하길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칼뱅에게 있어 사회적 직업 활동은 오직 신이 부여한 (ㄴ)을/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일 뿐이다.

    신의 영광, 소명

  • 35

    현세적인 프로테스탄트의 금욕은 전력을 다해 재산 낭비적 향락에 반대해 왔고 소비, 특히 (ㄱ)을/를 봉쇄해 버렸다. 반면에 이 금욕은 재화 획득을 전통주의적인 윤리의 장애에서 해방시키는 심리적 결과를 낳았으며, 이익 추구를 합법화시켰을 뿐 아니라 직접 신의 뜻이라고 간주함으로써 이익 추구에 대한 질곡을 뚫고 나왔다. 육욕과 외적 재화에의 집착에 대한 투쟁은 청교도 외에도 퀘이커교의 위대한 호교론자인 버클리가 입증했듯, 합리적 영리 활동에 대한 투쟁이 아니라 (ㄴ)에 대한 투쟁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비합리적 사용은, 특히 신의 뜻에 따라 개인과 전체의 생활 목적을 위해 합리적이고 공리주의적으로 사용하는 대신에 피조물 신격화로 비난된, 봉건적 감각에 알맞는 과시적 형태의 사치를 높이 평가하는 데서 나타난다. 합리적 사용은 재산가에게 고행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재산가가 그의 재산을 필요하고 실천적으로 유용한 일에 사용하는 것이었다. 사경제적 부의 생산이라는 면에서는 금욕은 부정직함뿐만 아니라 순수한 본능적 소유욕과도 투쟁했다. 왜냐면 이러한 소유욕은 탐욕, 배금주의 등으로 비난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그것이 부유해지는 것 자체를 궁극 목적으로 삼는 부의 추구이기 때문이었다. 소유 그 자체는 유혹이다. 그러나 여기서 금욕은 항상 선을 원하면서도 항상 악을 낳는 힘이었다. 왜냐면 금욕주의는 구약 성서에 따라 그리고 선행에 대한 윤리적 평가와 똑같이, 물론 목적으로서의 부의 추구를 비난받아야 할 가장 큰 악이라 배척하면서도 직업활동의 열매인 부의 획득은 (ㄷ)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이다. 즉, 종교적 평가는 부단하고 지속적이며 체계적인 세속적 직업활동을 단적인 최고의 금욕적 수단이자 동시에 거듭난 자에 대한 또는 그 신앙의 진실성에 대한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증명이라고 간주한다. 이러한 종교적 평가는 우리가 이 책에서 자본주의 정신이라 부르는 생활관의 확장을 위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지렛대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가 앞서 말한 소비의 봉쇄를 영리 추구의 이러한 해방과 관련시킨다면, 그 외적 결론, 즉 금욕주의적 절약 강박을 통한 자본 형성은 쉽게 얻어질 수 있다. 벌어들인 것의 (ㄹ)을/를 막는 것이 투자 자본으로서의 생산적 사용을 야기시킨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사치재 소비, 재산의 비합리적 사용, 신의 축복, 낭비

  • 36

    여기서 열정이란 하나의 대의 및 이 대의를 명령하는 주체인 신 또는 데몬에 대한 열정적 (ㄱ)을/를 의미하며, 그런 이상 이 열정은 객관적 태도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열정은 고인이 된 내 친구 게오르크 짐멜이 비창조적 흥분상태라고 부르곤 했던 그런 내적 태도를 뜻하는 게 아닙니다.

    헌신

  • 37

    하나의 대의에 대한 헌신으로서의 열정이 우리를 정치가로 만들 수 있으려면, 그것은 헌신과 동시에 바로 이 대의에 의한 우리의 책임의식을 일깨우는 열정이어야 하며, 더 나아가 이런 책임의식이 우리 행동을 주도하도록 만드는 열정이어야 합니다. 권력추구가 대의에 대한 전적인 헌신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 객관성을 결여한 채 순전히 개인적 자아도취를 목표를 하는 순간, 그때부터 정치가라는 직업의 신성한 정신에 대한 배반이 시작됩니다. 왜냐면 정치영역에서는 궁극적으로 단 두 가지 종류의 치명적인 죄악이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객관성의 결여와 무책임성이 그것입니다. 객관성의 결여는 그로 하여금 진정한 권력이 아니라 권력의 화려한 외관만을 추구하게 하고, 그의 무책임성은 그로 하여금 권력을 그 어떤 내용적 목적도 없이 단지 그 자체로서 즐기도록 만듭니다. 비록 권력은 불가피한 수단이고 권력지향은 모든 정치행위의 추동력 가운데 하나지만 아니 오히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벼락부자처럼 자신의 권력에 대해 허풍을 떨며 권력도취에 빠져 허영에 찬 자화상에 몰두하는 짓거리 등, 순전히 권력 그 자체를 숭배하는 모든 행태는 정치력을 왜곡시키는 가장 해로운 행태입니다.

  • 38

    초기 기독교들도 세상은 악령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권력과 폭력적 강제력을 수단으로 정치에 뛰어든 자는 악마적 세력과 계약을 맺는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으며, 또한 정치가의 행위에서는, 선한 것에서는 선한 것만이, 악한 것에서는 악한 것만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정반대일 경우가 흔하다는 사실도 매우 잘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자는, 정치적으로 정말 어린 아이에 불과합니다.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 특히 정치를 직업으로 삼겠다는 사람이면 누구나 상기한 윤리적 역설들을 자각하고 있어야 하고, 또한 이 역설들의 중압에 눌려서 그 자신이 변질된다면 그것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영혼의 구원 또는 타인의 영혼의 구제를 원하는 자는, 이것을 정치라는 방법으로 달성하고자 해선 안 됩니다. 정치는 전혀 다른 과업들을 가지고 있는데, 이 방법들은 폭력의 수단을 통해서만 완수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정치적 행위는 폭력적 수단을 가지고 그리고 (ㄱ) 하에서 수행되는 것이며 따라서 위 목적들(사회주의의 미래, 국제적 평화의 미래)의 추구는 영혼의 구원을 위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런 목적들을 종교적 신앙투쟁에서와 같은 순수한 (ㄴ)을/를 가지고 추구한다면, 이것은 이 목적들에 손상을 입힐 뿐 아니라 또한 이 고귀한 목적들을 수 세대 동안 불신의 대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왜냐면 이러한 (ㄴ)적 행위자에게는 결과들에 대한 책임감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순수한 (ㄴ)을/를 따를 경우 행위자는 모든 정치적 행위에 개입되어 있는 상기한 악마적 힘들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이 힘들은 무자비하며, 만약 그가 그들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이 힘들이 비단 그의 관련 행위뿐 아니라 그의 내면 전체에 대해 초래하는 결과에 그는 무력하게 내맡겨져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 성숙한 인간이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진정으로 그리고 온 마음으로 느끼며 (ㄱ)적으로 행동하다가 어떤 한 지점에 와서, "이것이 내 신념이오. 나는 이 신념과 다르게 행동할 순 없소."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비할 바가 없이 감동적인 것입니다. 이런 것이 인간적으로 순수한 것이며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ㄴ)와/과 (ㄱ)은/는 서로 절대적 대립관계가 아니라 보완관계에 있으며 이 두 윤리가 함께 비로소 참다운 인간,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질 수 있는 인간의 본질을 이루는 것입니다.

    책임윤리, 신념윤리(심정윤리)

  • 39

    (파이널) 우리는 신이 우리 모두에게 우리의 삶의 모든 행위를 할 때 그의 부르심에 주목할 것을 명령하고 계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신은 여러 가지 삶의 계층과 삶의 양식들을 구분함으로써 각 사람이 해야 할 일의 순서를 정해 두셨다. 신은 그 같은 삶의 양식들을 (ㄱ)이라 명하였다. 그러므로 각 사람은 자기 자신의 위치를 신께서 정해주신 초소라고 생각해야 한다.

    소명

  • 40

    (파이널) 세계는 오직 신의 자기 영광에 봉사하도록 정해져 있고, 선택된 기독교는 오직 신의 율법을 집행하여 세계에 신의 영광을 각자의 몫만큼 증대하도록 정해져 있다. 그러나 신은 기독교도의 사회적 실행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신은 사회적 형성이 자신의 율법에 맞게 이루어져 그 형성이 자신의 목적에 일치하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칼뱅 교도들의 사회 활동은 오직 '신의 영광을 더하기 위한 활동'일 뿐이다. 그러므로 모든 이의 현세적 삶에 봉사하는 (ㄱ)도 역시 그러한 성격을 갖는다. 이미 우리는 루터에게서 '이웃 사랑'으로부터 분업적 직업 노동의 도출을 보았다. 그러나 그에 있어 보다 불확실하고 순수한 구성적. 사상적 단초에 머물렀던 것이 칼뱅주의자에 와서는 그들의 윤리 체계의 특징적 일부가 되었다. (중략) 그 경우 이웃 사랑은 본질적으로 사물적이고 비인격적 성격, 즉 인간을 둘러싼 사회적 우주의 합리적 형성에 이바지한다는 성격을 띠게 된다. 성서의 계시에 따라 그리고 자연적 통찰에 따라 인류의 '효용'에 봉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분명한 이 우주의 놀라운 합목적적 형성과 질서는, 이러한 비인격적인 사회적 효용을 위한 노동이 신의 영광으로서 장려되고 또 그러한 것으로 신이 의욕한 것임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ㄴ)은/는 그 이상의 것이며 무엇보다도 신이 지정한 삶의 자기 목적이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라는 바울의 명제는 무조건적으로 그리고 만인에게 적용된다. (ㄴ) 의욕의 결핍은 구원받지 못함의 징후이다. 부자도 일하지 않으면 먹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부자가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노동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해도 그가 가난한 자와 함께 복종해야 하는 신의 율법이 그것을 명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신의 섭리는 만인에게 아무 차별 없이 만인이 인식하고 일해야 하는 (ㄷ)을/를 마련했기 때문이며, 이러한 직업은 루터주의에서와 같이 인간이 적응하고 만족해야 하는 운명이 아니라 신의 영광을 낳기 위해 신이 각자에게 부과한 명령이기 때문이다.

    직업 노동, 노동, 직업(소명)

  • 41

    (파이널) 실질적으로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었던 것은 재산을 갖고 휴식하는 것, 부를 향락하여 태만과 정욕을 낳고 특히 '거룩한 삶'에 대한 추구에서 이탈하는 것이었다. 현세에서 인간은 자신의 구원을 확신하기 위해 '낮 동안은 자신을 보내신 이의 일'을 행해야 한다. 태만과 향락이 아니라 오직 행위만이 분명하게 계시된 신의 뜻에 따라 (ㄱ)을/를 더하는 데 봉사한다.

    신의 영광

  • 42

    (파이널) 일하는 것을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며 정직하고 근면한 (ㄱ)을/를 통해 돈을 버는 것을 인생의 최고 목표로 삼는 태도,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경멸하고 계획을 세워 실천해야 하며 쓸데없는 휴식과 게으름을 물리치고 돈을 모으기 위해 절약하고 검소하게 생활하는 태도, 이것이 바로 (ㄴ) 정신입니다.

    노동, 자본주의

  • 43

    (파이널) 현세적인 프로테스탄트의 금욕은 전력을 다해 재산을 낭비하는 향락에 반대해 왔고 소비, 특히 사치재 소비를 봉쇄해 버렸다. 반면 이 금욕은 재화 획득을 전통주의적인 윤리의 장애에서 해방하는 심리적 결과를 낳았으며, (ㄱ)을/를 합법화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 (ㄴ)이라고 간주함으로써 (ㄱ)에 대한 질곡을 뚫고 나왔다.

    이익 추구, 신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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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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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윤영 · 7問 · 7ヶ月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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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問 • 7ヶ月前
    장윤영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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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윤영 · 7問 · 9ヶ月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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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問 • 9ヶ月前
    장윤영

    問題一覧

  • 1

    베버가 이야기한 자본주의 정신의 특징을 5가지 서술하시오

    1. 이윤추구 행위를 윤리적 차원에서 옹호 2. 노동자의 근면성 강조 3. 엄격한 규율과 훈련에 의한 경제 행위 추구 4. 보편적 경제 윤리에 기초 5. 금욕주의적 직업 윤리로 드러남

  • 2

    칼뱅의 예정설은 개인의 (ㄱ)을/를 낳는 결과를 가져옴

    내면적 고립감

  • 3

    칼뱅의 예정설은 근대 합리화의 본질인 (ㄱ)을/를 완결하는 효과를 가져옴

    탈주술화

  • 4

    개인은 (ㄱ) 속에서 신과 직접적으로 대면하고자 함 -> 직접적 대면의 관계 설정은 (ㄴ)의 역할을 부정

    내면적 고립감, 교회

  • 5

    칼뱅의 예정설은 (ㄱ)을/를 형성했으며 (ㄴ) 문화를 배척하는 심성을 강화

    개인주의, 감각적

  • 6

    칼뱅은 내면적 고립감이 감각문화를 거부하는 (ㄱ) 태도를 발생시킴

    청교도주의적

  • 7

    현세의 목적은 (ㄱ)을/를 증대시키는 것. 따라서 세속적 직업 노동은 단순한 생계유지가 아닌 (ㄱ)을/를 증대시키는 것으로 여겨짐

    신의 영광

  • 8

    칼뱅: 세속적 직업 노동은 믿음과 더불어 (ㄱ)에 대한 자기 확신의 수단

    구원

  • 9

    직업 노동을 통해 획득한 성과를 신에 의해 선택되었음을 알려주는 (ㄱ)의 확증으로 받아들임

    구원

  • 10

    프로테스탄티즘 금욕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신의 소명

  • 11

    직업 활동은 (ㄱ)을/를 방지하는 수단이자 (ㄴ)

    부정한 생활, 신의 소명

  • 12

    직업 노동을 통한 이윤추구를 (ㄱ)(으)로 간주

    신의 명령

  • 13

    전문화된 직업 활동과 이윤추구를 위한 기업가의 활동을 (ㄱ)(이)라는 관점에서 윤리적으로 정당화

    신의 소명

  • 14

    인간은 신의 소명의 부르심을 받고 직업활동을 이어나가게 되면 (ㄱ)이/가 촉진되어 자본주의의 발전을 가져오게 된다.

    노동 생산성

  • 15

    정치는 (ㄱ)을/를 수단으로 하는 활동

    물리적 강제력

  • 16

    정치권력의 본질은?

    물리적 강제력

  • 17

    국가는 특정 영토 내에서 정당한 (ㄱ)의 독점을 성공적으로 관철시킨 유일한 인간 공동체

    물리적 강제력

  • 18

    베버는 직업 정치가의 자질로 (ㄱ) (ㄴ) (ㄷ)을/를 제시

    열정, 책임감, 균형감각

  • 19

    직업 정치가의 열정은 합법적 폭력 행사권이라는 수단 때문에 (ㄱ)에 통제되고 조절되지 않으면 위험. 따라서 직업 정치가의 열정은 단순한 열정이 아니라 (ㄱ)을/를 일깨우며 나아가 (ㄱ)이/가 행동을 주도하는 열정이어야 함

    책임 의식

  • 20

    책임의식을 단련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이며, 내적 집중과 평정 속에서 현실을 관조하는 능력, 즉 사물과 사람에 대해 거리를 두는 능력을 이르는 말은?

    균형감각

  • 21

    정치는 언제나 자신의 목적을 위해 (ㄱ)을/를 본질로 하는 정치 권력을 수단으로 사용함. 직업 정치가는 폭력이라는 악마적 (ㄴ)을/를 가지고, 천사적 대의의 실현을 목표로 삼음. 따라서 직업 정치가는 (ㄷ)와/과 (ㄴ)의 극단적 괴리를 명확히 인식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함

    폭력성, 수단, 목적

  • 22

    개인과 국가의 도덕적 기준은 다름. 국가의 성공적 정치 행위는 (ㄱ)(이)라는 원칙을 따름

    국가의 생존

  • 23

    국가의 (ㄱ) 정당성과 (ㄴ) 정당성을 모두 중시할 것

    절차적, 결과적

  • 24

    지금까지 말한 것을 요약한다면, 현세적인 프로테스탄트의 금욕은 전력을 다해 재산을 낭비하는 향락에 반대해왔고 소비, 특히 사치재 소비를 봉쇄해 버렸다. 반면에 이 (ㄱ)은/는 재화의 획득을 전통주의적인 윤리의 장에서 해방하는 심리적 결과를 낳았으며, 이익의 추구를 합법화했을 뿐 아니라 직접 신의 뜻이라고 간주함으로써 이익 추구에 대한 질곡을 뚫고 나왔다.

    금욕

  • 25

    신은 그리스도교인의 사회적 활동과 성취를 요구한다. 신은 그리스도교인의 삶이 자신의 계명에 따라 사회적으로 형성되어 자신의 영광을 증대하는 목적에 이바지하길 원한다. 칼뱅주의자들이 세상에서 행하는 사회적 노동은 어디까지나 (ㄱ)을/를 더하기 위한 노동일 뿐이다. 그러므로 사회 전체의 현세적 삶에 이바지하는 직업 노동도 역시 그러한 성격을 띤다. 이웃 사랑은 일차적으로 자연법에 의해 주어진 작업 과제의 이행에서 나타나며 이 과정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질서의 합리적 형성에 이바지하는 성격을 띠게 된다.

    신의 영광

  • 26

    근대적 자본주의 정신, 그리고 그 뿐만 아니라 근대적 문화에 구성적 요소 중 하나인 직업 사상에 입각한 합리적 생활 방식은 기독교의 (ㄱ) 정신에서 탄생한 것

    금욕

  • 27

    신은 여러 가지 삶의 계층과 삶의 양식들을 구분해 놓으심으로써 각 사람이 해야 할 일의 순서를 정해 두셨습니다. 그와 같은 삶의 양식들을 (ㄱ)(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각 사람들은 자신의 일과 직업을 신께서 정해주신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소명

  • 28

    칼뱅에 따르면 세계는 오직 (ㄱ)에 봉사하도록 정해져 있고 선택된 그리스도인은 오직 신의 율법을 집행하여 (ㄱ)을/를 각자의 몫만큼 세계에 증대하도록 정해져 있다. 신은 그리스도교의 사회적 실행을 요구한다. 왜냐면 신은 사회적 형성이 자신의 율법에 맞게 이루어져 자신의 목적에 일치하길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칼뱅에게 있어 사회적 직업 활동은 오직 신이 부여한 (ㄴ)을/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일 뿐이다.

    신의 영광, 소명

  • 29

    직업윤리에서 루터의 큰 공헌이라면 모든 직업은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표명이다. 루터는 신에게 철저히 (ㄱ)하는 신앙의 응답에서 자유로운 (ㄱ)와/과 세계의 관계가 생겨나는 것으로 신학의 근거를 이해하고, 여기서 모든 직업을 하나님의 (ㄴ)에 의한 (ㄱ) 관계로 설명했다. 루터의 소명론에서 직업과 관련된 노동의 의미가 이웃에 대한 (ㄱ)의 측면을 강조하여 세속적인 도덕과 질서의 개념으로 형식화되었다면 칼뱅의 사상은 인간의 궁극적 운명은 신의 손에 있음을 강조한 (ㄷ)에 바탕을 둔 금욕주의와 자본주의가 결합하여 자본주의적 청교도 노동윤리로 발전한 것이다. 칼뱅에 의하면 성실한 (ㄹ)은 자신이 선택한 자라는 확신을 갖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며, (ㄹ)에 의해서만 종교상의 의혹을 떨치고 은혜의 확실성을 확신할 수 있다.

    봉사, 소명, 예정론, 직업노동

  • 30

    베버는 소명적 직업관과 세속적 금욕주의에 내포된 엄격한 규율성을 (ㄱ)의 관점에서 해명하고 있다. 첫째 금욕 정신을 통한 자기 규제는 충동적, 감정적 요소에 대한 제어라는 측면에서 (ㄱ)을/를 갖는다. 둘째 이러한 자기 통제가 무계획적이고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ㄱ)을/를 갖는다. 베버가 말하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세속적 금욕주의는 이런 의미에서 합리적 금욕주의로 명명될 수 있으며 이것은 결국 합리적 자본주의 정신을 의미하는 것이다. 베버의 근대 자본주의 정신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 (ㄱ)이지만, 경제적 가치 선택과 결정을 좌우하는 이러한 (ㄱ)은/는 인간의 사고와 행위의 준칙인 윤리적 요소에 의해 움직일 수밖에 없다. 베버의 자본주의 정신은 금욕적 프로테스탄티즘의 신앙과 상호연관 속에서 싹터 근대 자본주의로 옮겨 오면서 일에 대한 책임의 기초를 두었다.

    합리성

  • 31

    획득에의 충동, 이윤에 대한 추구, 그리고 가능한 많은 양의 화폐에 대한 추구 그 자체는 자본주의와 관계가 없다. 이 충동은 웨이터, 의사, 마부, 예술가, 창녀, 부패관리, 군인, 귀족, 십자군, 도박꾼, 거지 등에게도 존재하고 있으며 존재해 왔다. 아마도 이 충동은 그것의 객관적 가능성이 있는 혹은 있었던 곳이라면 지구상의 모든 나라에 그리고 모든 시대에 모든 종류와 조건의 인간들에게 공통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이러한 소박한 생각이 단적으로 포기되어야 함은 문화사 연구에서 극히 초기에 가르쳐져야 한다. 획득을 위한 무제한적 탐욕은 결코 자본주의와 동일한 것이 아니며 자본주의 정신과는 더욱더 동일한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아마도 이러한 비합리적 충동의 절제 혹은 적어도 그러한 충동의 합리적 완화와 동일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자본주의는 지속적이고 합리적인 자본주의적 경영에 의한 이윤 추구 그리고 영원히 재생되는 이윤의 추구와 동일한 것이다. 이는 반드시 그러해야만 하는데 왜냐면 전적으로 자본주의적인 사회 질서 안에서 이윤 획득을 위한 자신의 기회를 이용하지 않는 개별적인 자본주의 기업은 소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32

    이 윤리의 최고선은 다음과 같다. 즉, 돈을 벌고 더욱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적나라한 향락을 엄격히 피하면서 행복주의적이고 쾌락주의적인 모든 단점을 전적으로 벗어나 돈 버는 것을 그저 자기 목적으로 여기므로 개인의 행복과 효용에 대립되는 초월적이고 단적으로 비합리적인 것으로 보일 정도다. 인간은 돈벌이를 자신의 생활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의 목적 자체로 여기는 것이다. 화폐 취득은 근대적 경제 질서 안에서 직업상 유능함의 표현이며, 이 유능함은 쉽게 알 수 있듯이 프랭클린 도덕의 실질적인 알파와 오메가이다. 사실상 오늘날 익숙하지만 실제로는 결코 자명한 것이 아닌 이 독특한 직업의무라는 사상은 개인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즉 자신의 직업적 활동과 무관하게 받아들여야만 하는 의무이다. 이 의무는 직업이 무엇이든, 특히 직업이 자신의 순수한 노동력의 사용인지 아니면 자신의 소유물의 사용인지와 무관하게 성립한다. 이러한 사상은 자본주의 문화의 사회윤리에 특징적인 것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그 윤리에 대해 구성적 중요성을 갖는다.

  • 33

    화폐 취득상 자기 이익 추구의 절대적인 파렴치가 보편적으로 지배하는 현상은 바로 부르주아적.자본주의적 발전이 뒤처지는 나라에서 매우 특징적 현상이었다. 모든 공장주가 알고 있듯 그러한 나라의 노동자들에게 양심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 그 나라의 자본주의 발달을 가로막는 주요 원인이었고, 현재에도 어느 정도는 그러하다. 금전욕에 거리낌 없이 매달리는 사람은 결코 대중현상인 특정한 근대 자본주의 정신을 낳은 경향의 대표자가 아니었다.

  • 34

    칼뱅에 따르면 세계는 오직 (ㄱ)에 봉사하도록 정해져있고, 선택된 그리스도인은 오직 신의 율법을 집행하여 (ㄱ)을/를 각자의 몫만큼 세계에 증대하도록 정해져 있다. 신은 그리스도교의 사회적 실행을 요구한다. 왜냐면 신은 사회적 형성이 자신의 율법에 맞게 이루어져 자신의 목적에 일치하길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칼뱅에게 있어 사회적 직업 활동은 오직 신이 부여한 (ㄴ)을/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일 뿐이다.

    신의 영광, 소명

  • 35

    현세적인 프로테스탄트의 금욕은 전력을 다해 재산 낭비적 향락에 반대해 왔고 소비, 특히 (ㄱ)을/를 봉쇄해 버렸다. 반면에 이 금욕은 재화 획득을 전통주의적인 윤리의 장애에서 해방시키는 심리적 결과를 낳았으며, 이익 추구를 합법화시켰을 뿐 아니라 직접 신의 뜻이라고 간주함으로써 이익 추구에 대한 질곡을 뚫고 나왔다. 육욕과 외적 재화에의 집착에 대한 투쟁은 청교도 외에도 퀘이커교의 위대한 호교론자인 버클리가 입증했듯, 합리적 영리 활동에 대한 투쟁이 아니라 (ㄴ)에 대한 투쟁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비합리적 사용은, 특히 신의 뜻에 따라 개인과 전체의 생활 목적을 위해 합리적이고 공리주의적으로 사용하는 대신에 피조물 신격화로 비난된, 봉건적 감각에 알맞는 과시적 형태의 사치를 높이 평가하는 데서 나타난다. 합리적 사용은 재산가에게 고행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재산가가 그의 재산을 필요하고 실천적으로 유용한 일에 사용하는 것이었다. 사경제적 부의 생산이라는 면에서는 금욕은 부정직함뿐만 아니라 순수한 본능적 소유욕과도 투쟁했다. 왜냐면 이러한 소유욕은 탐욕, 배금주의 등으로 비난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그것이 부유해지는 것 자체를 궁극 목적으로 삼는 부의 추구이기 때문이었다. 소유 그 자체는 유혹이다. 그러나 여기서 금욕은 항상 선을 원하면서도 항상 악을 낳는 힘이었다. 왜냐면 금욕주의는 구약 성서에 따라 그리고 선행에 대한 윤리적 평가와 똑같이, 물론 목적으로서의 부의 추구를 비난받아야 할 가장 큰 악이라 배척하면서도 직업활동의 열매인 부의 획득은 (ㄷ)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이다. 즉, 종교적 평가는 부단하고 지속적이며 체계적인 세속적 직업활동을 단적인 최고의 금욕적 수단이자 동시에 거듭난 자에 대한 또는 그 신앙의 진실성에 대한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증명이라고 간주한다. 이러한 종교적 평가는 우리가 이 책에서 자본주의 정신이라 부르는 생활관의 확장을 위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지렛대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가 앞서 말한 소비의 봉쇄를 영리 추구의 이러한 해방과 관련시킨다면, 그 외적 결론, 즉 금욕주의적 절약 강박을 통한 자본 형성은 쉽게 얻어질 수 있다. 벌어들인 것의 (ㄹ)을/를 막는 것이 투자 자본으로서의 생산적 사용을 야기시킨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사치재 소비, 재산의 비합리적 사용, 신의 축복, 낭비

  • 36

    여기서 열정이란 하나의 대의 및 이 대의를 명령하는 주체인 신 또는 데몬에 대한 열정적 (ㄱ)을/를 의미하며, 그런 이상 이 열정은 객관적 태도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열정은 고인이 된 내 친구 게오르크 짐멜이 비창조적 흥분상태라고 부르곤 했던 그런 내적 태도를 뜻하는 게 아닙니다.

    헌신

  • 37

    하나의 대의에 대한 헌신으로서의 열정이 우리를 정치가로 만들 수 있으려면, 그것은 헌신과 동시에 바로 이 대의에 의한 우리의 책임의식을 일깨우는 열정이어야 하며, 더 나아가 이런 책임의식이 우리 행동을 주도하도록 만드는 열정이어야 합니다. 권력추구가 대의에 대한 전적인 헌신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 객관성을 결여한 채 순전히 개인적 자아도취를 목표를 하는 순간, 그때부터 정치가라는 직업의 신성한 정신에 대한 배반이 시작됩니다. 왜냐면 정치영역에서는 궁극적으로 단 두 가지 종류의 치명적인 죄악이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객관성의 결여와 무책임성이 그것입니다. 객관성의 결여는 그로 하여금 진정한 권력이 아니라 권력의 화려한 외관만을 추구하게 하고, 그의 무책임성은 그로 하여금 권력을 그 어떤 내용적 목적도 없이 단지 그 자체로서 즐기도록 만듭니다. 비록 권력은 불가피한 수단이고 권력지향은 모든 정치행위의 추동력 가운데 하나지만 아니 오히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벼락부자처럼 자신의 권력에 대해 허풍을 떨며 권력도취에 빠져 허영에 찬 자화상에 몰두하는 짓거리 등, 순전히 권력 그 자체를 숭배하는 모든 행태는 정치력을 왜곡시키는 가장 해로운 행태입니다.

  • 38

    초기 기독교들도 세상은 악령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권력과 폭력적 강제력을 수단으로 정치에 뛰어든 자는 악마적 세력과 계약을 맺는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으며, 또한 정치가의 행위에서는, 선한 것에서는 선한 것만이, 악한 것에서는 악한 것만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정반대일 경우가 흔하다는 사실도 매우 잘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자는, 정치적으로 정말 어린 아이에 불과합니다.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 특히 정치를 직업으로 삼겠다는 사람이면 누구나 상기한 윤리적 역설들을 자각하고 있어야 하고, 또한 이 역설들의 중압에 눌려서 그 자신이 변질된다면 그것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영혼의 구원 또는 타인의 영혼의 구제를 원하는 자는, 이것을 정치라는 방법으로 달성하고자 해선 안 됩니다. 정치는 전혀 다른 과업들을 가지고 있는데, 이 방법들은 폭력의 수단을 통해서만 완수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정치적 행위는 폭력적 수단을 가지고 그리고 (ㄱ) 하에서 수행되는 것이며 따라서 위 목적들(사회주의의 미래, 국제적 평화의 미래)의 추구는 영혼의 구원을 위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런 목적들을 종교적 신앙투쟁에서와 같은 순수한 (ㄴ)을/를 가지고 추구한다면, 이것은 이 목적들에 손상을 입힐 뿐 아니라 또한 이 고귀한 목적들을 수 세대 동안 불신의 대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왜냐면 이러한 (ㄴ)적 행위자에게는 결과들에 대한 책임감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순수한 (ㄴ)을/를 따를 경우 행위자는 모든 정치적 행위에 개입되어 있는 상기한 악마적 힘들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이 힘들은 무자비하며, 만약 그가 그들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이 힘들이 비단 그의 관련 행위뿐 아니라 그의 내면 전체에 대해 초래하는 결과에 그는 무력하게 내맡겨져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 성숙한 인간이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진정으로 그리고 온 마음으로 느끼며 (ㄱ)적으로 행동하다가 어떤 한 지점에 와서, "이것이 내 신념이오. 나는 이 신념과 다르게 행동할 순 없소."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비할 바가 없이 감동적인 것입니다. 이런 것이 인간적으로 순수한 것이며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ㄴ)와/과 (ㄱ)은/는 서로 절대적 대립관계가 아니라 보완관계에 있으며 이 두 윤리가 함께 비로소 참다운 인간,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질 수 있는 인간의 본질을 이루는 것입니다.

    책임윤리, 신념윤리(심정윤리)

  • 39

    (파이널) 우리는 신이 우리 모두에게 우리의 삶의 모든 행위를 할 때 그의 부르심에 주목할 것을 명령하고 계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신은 여러 가지 삶의 계층과 삶의 양식들을 구분함으로써 각 사람이 해야 할 일의 순서를 정해 두셨다. 신은 그 같은 삶의 양식들을 (ㄱ)이라 명하였다. 그러므로 각 사람은 자기 자신의 위치를 신께서 정해주신 초소라고 생각해야 한다.

    소명

  • 40

    (파이널) 세계는 오직 신의 자기 영광에 봉사하도록 정해져 있고, 선택된 기독교는 오직 신의 율법을 집행하여 세계에 신의 영광을 각자의 몫만큼 증대하도록 정해져 있다. 그러나 신은 기독교도의 사회적 실행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신은 사회적 형성이 자신의 율법에 맞게 이루어져 그 형성이 자신의 목적에 일치하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칼뱅 교도들의 사회 활동은 오직 '신의 영광을 더하기 위한 활동'일 뿐이다. 그러므로 모든 이의 현세적 삶에 봉사하는 (ㄱ)도 역시 그러한 성격을 갖는다. 이미 우리는 루터에게서 '이웃 사랑'으로부터 분업적 직업 노동의 도출을 보았다. 그러나 그에 있어 보다 불확실하고 순수한 구성적. 사상적 단초에 머물렀던 것이 칼뱅주의자에 와서는 그들의 윤리 체계의 특징적 일부가 되었다. (중략) 그 경우 이웃 사랑은 본질적으로 사물적이고 비인격적 성격, 즉 인간을 둘러싼 사회적 우주의 합리적 형성에 이바지한다는 성격을 띠게 된다. 성서의 계시에 따라 그리고 자연적 통찰에 따라 인류의 '효용'에 봉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분명한 이 우주의 놀라운 합목적적 형성과 질서는, 이러한 비인격적인 사회적 효용을 위한 노동이 신의 영광으로서 장려되고 또 그러한 것으로 신이 의욕한 것임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ㄴ)은/는 그 이상의 것이며 무엇보다도 신이 지정한 삶의 자기 목적이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라는 바울의 명제는 무조건적으로 그리고 만인에게 적용된다. (ㄴ) 의욕의 결핍은 구원받지 못함의 징후이다. 부자도 일하지 않으면 먹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부자가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노동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해도 그가 가난한 자와 함께 복종해야 하는 신의 율법이 그것을 명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신의 섭리는 만인에게 아무 차별 없이 만인이 인식하고 일해야 하는 (ㄷ)을/를 마련했기 때문이며, 이러한 직업은 루터주의에서와 같이 인간이 적응하고 만족해야 하는 운명이 아니라 신의 영광을 낳기 위해 신이 각자에게 부과한 명령이기 때문이다.

    직업 노동, 노동, 직업(소명)

  • 41

    (파이널) 실질적으로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었던 것은 재산을 갖고 휴식하는 것, 부를 향락하여 태만과 정욕을 낳고 특히 '거룩한 삶'에 대한 추구에서 이탈하는 것이었다. 현세에서 인간은 자신의 구원을 확신하기 위해 '낮 동안은 자신을 보내신 이의 일'을 행해야 한다. 태만과 향락이 아니라 오직 행위만이 분명하게 계시된 신의 뜻에 따라 (ㄱ)을/를 더하는 데 봉사한다.

    신의 영광

  • 42

    (파이널) 일하는 것을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며 정직하고 근면한 (ㄱ)을/를 통해 돈을 버는 것을 인생의 최고 목표로 삼는 태도,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경멸하고 계획을 세워 실천해야 하며 쓸데없는 휴식과 게으름을 물리치고 돈을 모으기 위해 절약하고 검소하게 생활하는 태도, 이것이 바로 (ㄴ) 정신입니다.

    노동, 자본주의

  • 43

    (파이널) 현세적인 프로테스탄트의 금욕은 전력을 다해 재산을 낭비하는 향락에 반대해 왔고 소비, 특히 사치재 소비를 봉쇄해 버렸다. 반면 이 금욕은 재화 획득을 전통주의적인 윤리의 장애에서 해방하는 심리적 결과를 낳았으며, (ㄱ)을/를 합법화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 (ㄴ)이라고 간주함으로써 (ㄱ)에 대한 질곡을 뚫고 나왔다.

    이익 추구, 신의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