問題一覧
1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1909년에 항일운동 단체인 대동청년단에 가입하여 활동함.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의 경상도 대표의원이 됨. 1927년 8월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재무부장이 되어 재정 마련을 위해 힘씀.
김갑
2
부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동래지역 3‧1운동을 엄진영과 함께 준비하고 1919년 3월 13일 동래장터 만세시위에 참가함. 의열단 활동 자금 조달 등으로 독립운동을 이어감.
김명규
3
부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범어사 불교전문강원‧범어사 지방학림‧명정학교의 학생들을 규합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함. 일제의 탄압으로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 특파원으로 활동하고 불교계 혁신운동도 전개함.
김법린
4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의열단의 첫 거사인 부산경찰서 폭탄투척 의거를 위해 박재혁에 자금을 전달함. 김원봉의 비서, 조선의용대 간부로 활동하다가 한국광복군으로 편입됨.
김병태
5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일제의 부당함에 맞서 동래고등보통학교 동맹 휴학과 장산 촛불 시위를 주도함. 동래와 일본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한 강연 및 집회 등을 주도함. 1934년 조선광복회를 조직하여 활동함.
박영출
6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1920년 8월 김원봉을 만나 의열단에 입단함. 1920년 9월 14일 고서적 상인으로 위장하고 부산경찰서로 찾아간 폭탄을 투척한 후 현장에서 체포됨.
박재혁
7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근우회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풀려난 후 중국으로 망명함. 중국 망명 후 의단의 핵심 멤버로 활약함. 남편 김원봉과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함. 곤륜산 전투에서 입은 부상 후유증으로 1944년에 생을 마감함.
박차정
8
부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고향의 전답을 팔아 부산에 백산상회를 설립하여 해외 독립 자금을 조달함. 1933년에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함.
안희제
9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마산 의신학교에서 교사로 재직 중 학생들과 항일운동을 전개함. 3‧1운동을 전후한 시기에 중국으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함. 해방 이후 부산 최초 복지단체인 자매여숙을 설립함.
양한나
10
일제강점기 부산에서 수학한 독립운동가. 구명학교를 제1회로 졸업한 뒤 구포저축주식회사에 주주로 참가함. 유학 후 대동청년단의 비밀 결사 운동을 전개함. 대한민국 임시정부 개혁을 위해 노력하다가 과로로 생을 마감함.
윤현진
11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1908년에 간도로 건너가 민족학교를 설립하여 국권회복을 위한 인재 양성에 힘씀. 항일운동 단체의 통일적 규합을 위해 상하이로 가던 중 일본인에게 피살됨.
이봉우
12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함. 광복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의 한 사람으로 귀국함. 1950년에 제2회 부산진 국회의원으로 선출됨.
장건상
13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박재혁의 부산경찰서 폭파 사건 등 의열단원의 국내활동을 도와줌. 신간회 부산지회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함. 광복 후 민주중보 사장으로 취임함.
최천택
14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이자 음악가. ‘아리랑’ 등 항일 가곡과 군가를 작곡하여 보급함. 『광복군가집』(제1~2집)을 간행하여 보급함. 광복 이후 부산에서 공연 활동을 함.
한형석
15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조국이 일제에 강점되자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함. 광복 후 귀국하여 경남남도 도립마산병원의 병원장으로 근무하다가 1948년 부산에서 한내과를 개업함
한흥교
16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평소 항일 의식이 강했기에 1919년 서울의 3‧1운동 소식을 접하자 68세의 노령으로 앞장서서 참여함. 구포장터 만세운동을 주동자로 체포된 후 옥고를 견디지 못 하고 부산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함.
윤정은
17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1919년 기장면에서 일어난 3‧1 만세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함.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대구감옥소에서 옥고를 치름. 고문 후유증으로 병보석으로 가출옥하였으나 2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함.
구수암
18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기장면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가 옥고를 치름. 중국과 국내 등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하다가 구금과 고문의 후유증으로 1937년에 생을 마감함.
김도엽
19
부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법린과 함께 범어사 3‧1운동을 주도함. 3‧1운동 이후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함. 독립운동 자금 송금 적발로 옥고를 치른 후 범어사로 돌아와 승려의 훈육에 힘씀.
김상헌
20
부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부산공립보통학교의 교사로 재직하면서 3‧1운동에 참여함. 『조선 독립신문』 발행과 임시정부에 군자금 조달하다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름.
홍재문
21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부산제2상업학교 재학 중 경남학도전력증강국방경기대회에서 일본인 심판 노다이의 부당행위에 항의한 부산항일학생의거를 주도하다가 검거됨. 출옥 후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함.
김선갑
22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고향인 동래에 내려와 동래장터 3‧1운동을 주도함. 상하이에서 중국본부한인청년동맹에 참여하여 독립운동 활동을 함. 해방 후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가함.
곽상훈
23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일본 유학 후 동아일보사 부산지국 기자 활동을 하다가 의열단에 입단하여 독립운동을 함. 해방 후 경상남도지사로 임명됨.
문시환